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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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길은 잘못된 길일 수도 있습니다


무쇠를 땅속에 묻었는데 100년이 지난 후에 금덩이가 되어 있더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구리를 매일 닦고 기름을 바르고 정성을 들였더니 10년 후에 은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잘못된 사실이 오랜 세월이 흘러 세대가 바뀌고 나면 진실처럼 되어 버리는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특히 역사에서 그런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역사의 재조명”이라는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어떤 역사적인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분명한 진리가 종교 암흑시대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많이 변질되고 왜곡되었는데, 아직도 바로 잡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대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십계명의 한 부분을 바꾸어 놓은 것은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십계명에는 분명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고 되어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라는 말 대신 ‘주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성경이 말하는 일곱째 날 토요일 대신 첫째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애굽기 20:8~10)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의 일부분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에서 “안식일을…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결코 변경할 수 없는 십계명 중 제4계명의 안식일은 어느 날 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제 칠일” 이라고 말합니다. 일주일 중 제 7일이 되는 일곱째 날이 언제입니까? 토요일입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국어사전은 “토요일”을 “한 주일의 일곱째 날” 혹은 “일요일부터 일곱째 날”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안식일로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이 성경상 일곱째 날 안식일은 오늘날의 토요일임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토요일 안식일 대신 “주일”이라고 하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또 율법 이야기로군!”하고 스쳐 지나갈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그 기원과 중요성, 그리고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십계명에 그렇게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안식일 예배가 어떻게 해서 일요일 예배로 바뀌었을까요?

 


서기 135년 이전에는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역사적 기록이 없습니다. 일요일 준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약 135년경의 문헌인 「바나바의 서신」과 150년경의 문헌인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의 「제일 변증(First Apology 67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의 일요일 준수는 서기 135년에서 150년 사이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이유로 제 7일 안식일을 지키던 기독교인들이 당시의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던 사람들의 예배일인 일요일(Sunday)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을까요?


132년에서 135년 사이에, 로마 제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세배리우스 장군으로 하여금 이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제 22군단이 전멸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란이 진압된 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광적인 증오심으로 대대적인 보복 조치를 취하였는데 (1)토라([모세 오경] 사용 금지, (2)할례 금지, (3)안식일 준수 금지 등의 명령을 내리고, 거역하는 자들을 사형으로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유대인과 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모세의 오경을 경전으로 삼고, 안식일을 지키던 기독교인들까지 유대교의 분파로 간주되어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교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호교론자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유대교와 기독교를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토요일 대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 하여 주일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붙여진 변명에 불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이 변경되었다거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째 날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일요일 예배는 전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일요 예배를 교회에 정착시키고 뿌리를 내리게 한 장본인은 천주교회이므로, 천주교회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교부들의 신앙」(기본스저, 장면역, 1990년도, 108쪽)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들어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위기에 처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시작한 이 풍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 안에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일요일을 신성시하는 여러 주장들이 등장하였습니다. 특별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21년 3월 7일, 제국 내에 일요일 휴업령을 내린 사건과, 343년부터 381년까지 몇 차례 열렸던 라오디게아 종교 총회에서 인식일의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기므로 일요일 신성론이 기독교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 휴업령과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종규 제 2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존경할만한 태양의 날(일요일)에 모든 관공리와 각 도시의 주민과 제조 공장의 종업원들은 휴업하라. 그러나 농촌에서 경작에 종사하는 농민은 자유로이 노동할 수 있다. 이는 씨를 뿌리고 포도를 심는 데 불리할까 염려됨이라”(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3 [5th ed. New York : Scribner, 1902]p.380).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 되거나 토요일에 게을러서는 안되고, 이 날에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은 존귀히 여기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이 날에 일하지 말 것이다. 만일 그들이 유대화된 사실이 판명되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 것이다.”(Charles Joseph Hefele A History of the Christian Councils vol.2, Trans and ed. By H. N. Oxenham [Edinburgh : T. and T.Clark, 1896] pp.143~145)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전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새로운 제도가성경상 안식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의 한 교리문답서에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질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대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질문 :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대답 “ 천주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 총회에서 그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Peter Geiermann, The Conver`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 [1957 ed.] p. 50)

1517년,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중세 암흑시대 동안 잃어버렸던 많은 진리들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왕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것이니, 그리고 사회 구조상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편리하니까 그냥 이대로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의 원칙을 사람의 형편이나 사정에 따라 바꾸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섬기기는 하되, 그 명령을 어기고 다른 제물을 가져와서 하나님께 바친, 가인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 도다.”(마가복음 7:6~9)


예수를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믿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가인이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요일 예배는 인본주의 신앙의 표본이로 안식일 예배는 신본주의 신앙의 표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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