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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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과 신앙의 자유와 진정한 예배

시작하는 말
 

  처음 창조된 인간에게 최초로 이르러 온 유혹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창 3:5)는 사단의 속삭임이었다. 사람은 모두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중심(自重心)과 자신의 품위와 인격을 지키려는 자존심(自尊心)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능은 자신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被造物)임을 인정하고 기억할 때는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관건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표현인 예배를 부인하고 거절할 때는 이러한 인간의 자존심은 자기숭배(崇拜)로 변질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두게 됨으로써 자신이 거짓 신인 우상(偶像)이 되고 만다. 그것이 곧 사단의 정신이요, 사단의 종교인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면 자신이 곧 하나님이 된다. 그것은 모든 무신론적인 독재자들과 세속적인 위인들의 자기 신격화(神格化) 현상이다. 느부갓네살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 금 신상의 제막식

 
1.느부갓네살 왕은 어떤 신상을 세우도록 했는가?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단 3:1).

  
[설명] 다니엘서 2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세상의 장래를 나타내 보이신 두려운 신상을 보았다. 그 결과로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 경배했다. 그런데 3장에서 우리는 반대로 느부갓네살 왕이 거대한 금 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에 경배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본다. 3장에서 우리는 참된 신앙의 자유와 진정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배우게 된다. 2장의 사건이 있은 후 여러 해가 지나 왕권(王權)이 확고해진 때 느부갓네살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두라(지금의 나르 두라) 평지에 받침대를 포함하여 높이 60규빗(103피트), 폭이 6규빗(10피트)이나 되는 거대한 신상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국립 관현악단을 초청한 가운데 화려한 제막식(除幕式)을 올리고 있었다.

 
2.제막식에는 누가 참석했는가?

  
"이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단 3:3).

  
[설명] 참석 범위와 의식의 규모로 볼 때 금 신상은 국교(國敎)의 대상인 국신(國神)의 위치에 있었으며 제막식에는 도지사였던 유다의 세 젊은이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왕의 수석 고문이었던 다니엘은 왕이 허락한 어떤 사유로 불참했다.

 
3.금 신상을 세운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이러한 목적에 어긋날 때 어떠한 형벌이 선언되었는가?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하매" (단 3:5, 6).

  
[설명] 금 신상은 단순한 조각품이 아니라 사단이 그 배후 세력인 바벨론의 신들을 경배하게 할 목적으로 건립한 것이었고 제막식은 이러한 거짓 신들을 예배하는 의식이었다. 신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풀무불에 던져 넣는 극형에 처해졌다. 느부갓네살은 왜 이처럼 엄청난 일을 계획했을까? 다니엘이 왕의 꿈에 나타났던 2장의 신상을 해석할 때,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라고 선언했었다. 머리 부분에서 그의 나라가 끝난다는 해석을 그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이 해석을 바꾸어 바벨론을 만세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발끝까지 금으로 된 신상을 만들게 했으며 모든 사람들을 절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신격화했다. 제막식은 바벨론의 흉몽을 길몽으로 바꾸기 위한 화려한 푸닥거리였다. 그것은 과거 로마제국이 황제를 신격화하여 황제예배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을 원형극장에 던져 사자 밥이 되게 한 것이나 일본의 천황숭배인 신사참배와 같은 목적으로 인간의 신앙 양심을 짓밟는 명백한 우상숭배였다.

 
▶ 참 신앙의 용사들

 
4.누가 감히 왕명을 어기고 금 신상에 경배하기를 거절했는가?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단 3:12).

  
[설명] 신상 참배를 알리는 국립 관현악단의 장엄한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참석한 모든 군주들과 고관들이 일제히 엎드려 경배했으나 도지사의 신분으로 참석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장승처럼 태연하게 서 있었다. 이 사실은 즉시 시기심에 가득 찬 바벨론의 지도급 인사들에 의해 왕에게 보고되었다. 이들은 지난날 왕의 꿈을 찾아 해석하지 못함으로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었으나 다니엘의 호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었으나 이제 그 은혜를 왕에 대한 충성을 빙자하여 이렇게 배신으로 갚은 것이다. 사단이 조종하는 인종과 종교와 명예에 대한 살인적인 편견과 시기가 발동된 것이다.

 
5.세 젊은이의 뜻밖의 행동에 대한 왕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단 3:14, 15).

  
[설명]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바벨론의 신들에게 경배하지 않는 가장 불경(不敬)한 행위인 동시에 왕의 명령을 거스르는 중죄(重罪)임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평소에 다니엘과 세 친구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왕은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어 그들을 설득하는 한편 거절할 경우 가장 가혹한 방법으로 처형하겠다는 왕의 결단을 통고했다.

 
▶ 하나님과 바벨론 신의 대결

 
6.왕의 선언과 세 젊은이의 신앙 고백 가운데 나타난 이 사건의 핵심이 되는 주제는 무엇인가?

  
느부갓네살 :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단 3:15).

  세 젊은이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단 3:16, 17).

  
[설명] 금 신상의 제막식에서 엎드려 절하는 문제는 단순한 의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느부갓네살이 섬기는 바벨론의 신과 유다의 세 젊은이가 섬기는 하나님과의 대결임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어느 신이 참 하나님인가를 확증해야 하는 최고의 주제와 사람이 어느 신에게 최선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판가름해야 하는 인간의 가장 엄숙한 선택이었다.

 
7.느부갓네살이 죽음으로 위협하며 경배를 강요한 바벨론의 신은 누구인가?

  
[해답] 바벨론의 주신(主神)의 칭호는 "벨"(Bel)로서 이름은 마르둑(Marduk)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의 주신 "바알"(Baal)과 같은 "주"(主 · lord)라는 뜻이다. 고대 근동의 전설에 의하면 마르둑은 사람과 동물을 창조하여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 게 한 창조의 신으로 자신의 보좌는 북극 하늘 높은 산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하늘에서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내쫓겨 마침내 사단이 된 성경의 악한 천사 루스벨(Lucifer)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8.다니엘과 세 친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해답]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참 하나님이시다. 하늘에서 반역을 일으켜 추방당한 사단의 유혹에 빠져, 범죄 함으로 죽게 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신약 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리하여 유다의 세 젊은이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로 대표된 극한의 예배 논쟁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대결, 선과 악의 대쟁투임이 확실해졌다.

 
9.유대인 세 젊은이는 왜 금 신상에게 절하는 일을 거부했으며 하나님만 경배하기로 작정했는가?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하더라"(계 14:7).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3~5).

  
[설명] 부모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은 생명을 주고받은 특별한 관계로서 자식을 낳아서 사랑과 희생(犧牲)으로 기른 사람만이 부모이며 부모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부모만이 자녀들로부터 최고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인 것이다. 그처럼 아무나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세상을 지혜와 능력과 사랑으로 창조하신 창조주만이 하나님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하나님만이 인간으로부터 최고의 존경과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대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합당한 효도가 자식의 본분(本分)이듯 합당한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본분이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우상이란 창조주가 아니면서도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존경과 예배를 요구하는 파렴치한 거짓 신이며 그런 행위가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것이 우상을 내세워 경배를 강요하는 거짓 종교의 진상이며 그 배후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을 이끌어 온 사단인 것이다.

 
10.강요된 우상숭배를 단호하게 거절한 세 젊은이의 위대한 신앙 고백은 무엇이었는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설명] 세 젊은이는 우상숭배는 고려할 여지도 없는 요구이며 그들이 섬겨온 하나님만이 인간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창조주이심을 선언하였다. 동시에 그들이 섬기는 사람의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자신들을 풀무불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목적이 있으셔서 그들의 생명을 구해내지 않으신다 해도 하나님만을 경배하려는 그들의 결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했다.

 
11.풀무불에서 건져내지「아니 하실지라도(if not)」하나님만을 경배 하겠다는 세 젊은이의 신앙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신앙인가?

  
[해답] 세상의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유지되는 거래(去來) 관계이다. 그러나 생명을 주고받은 특별한 사이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은 그렇지 않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 오히려 자식이 어려울수록, 부모가 손해 볼수록 더욱 강해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관계이다. 이러한 부모의 사랑을 깨달은 자식은 자신이 불행하게 되거나, 부모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베풀 수 없는 때에라도 조건 없는 효도를 계속하는 효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생명을 주고받은 하나님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반응인 것이다. 무슨 혜택이나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유산(遺産)을 받기 위해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같은 거래 행위이지 진정한예배가 아닌 것이다. 풀무불에서 건져내지 아니하실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세 친구의 고백은 진정한 예배가 무엇임을 천명한 것이다.

 
12.금 신상에 절하기를 끝내 거절한 세 젊은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을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라 하니"(단 3:19, 20).

  
[설명] 자신의 호의마저 거절한 세 젊은이에 대해 격분한 왕은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에 그들을 던져 넣게 했다. 이 풀무는 요즈음도 볼 수 있는 바벨론의 벽돌 굽는 가마인데 원유와 짚을 섞은 인화성(引火性) 연료를 썼으므로 7배나 뜨겁게 하기 위해 갑자기 양을 늘이자 좁은 입구로 불길이 솟아 나와 던져 넣던 군사들을 태워 죽게 했다.

 
13.풀무불 속에 던져진 세 젊은이에게는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단 3:24~26).

  
[설명] 입구를 통해 풀무 속을 응시하던 왕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풀무불 속에 결박이 풀린 세 젊은이와 함께 하나님의 아들 같은 또 다른 존재가 함께 거니는 모습을 목도한 것이다. "신들의 아들"과 같은 넷째 존재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기 위해 죽음을 불사(不辭)한 이 충성스럽고 기특한 아들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풀무불 속까지 동행하신 것이다.

 
▶ 종교 자유의 원칙

 
14.이 엄청난 기적에 대한 왕의 반응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합당한 조치였는가?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단 3:28, 29).

  
[설명] 머리카락 하나도 그슬리지 아니하고 살아 나온 세 젊은이를 목도한 왕은 즉시 그들이 목숨을 바쳐 섬긴 참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했다. 그리고 이러한 참 하나님에게 합당한 존경을 드리지 않는 사람들은 몸을 쪼개어 죽이라는 끔찍한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선택의 자유를 전제로 하듯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져야 한다. 우상숭배를 강요한 것이나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강요하는 조서를 내린 것 모두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범죄 행위인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강제된 예배를 받지 않으시며 자유 선택에 의한 진정한 예배만을 인정하신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천부(天賦)의 권리이다.

 
▶ 참다운 예배의 요청

 
15.마지막 시대에 모든 사람이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도록 요청하는 어떠한 기별이 주어졌으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6, 7).

[설명] 우주와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시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마땅히 그래야 하듯 모든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한다. 부모의 출산(出産)이 효도의 근거가 되듯 하나님의 창조(創造)는 참된 예배의 합당한 근거가 된다.

 
16.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최고의 존경을 표하는 합당한 예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 11).

  
[설명] 창조는 예배의 근거이다. 그러므로 창조의 기념일인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날로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져야 하는 성일(聖日)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십계명 가운데 넷째 계명에 명시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합법적인 예배일인 것이다.

 
▶ 참다운 예배와 핍박

 
17.마지막 때에 또다시 십계명에 명시된 합당한 예배를 고수하는 소수의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는 다수의 박해가 어떻게 예언되었는가?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5~17).

  
[설명] 고대 바벨론 당시에 그랬듯이 마지막 때에도 영적인 바벨론으로 표상(表象)된 정치와 종교의 연합된 세력에 의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예배를 고수하는 소수가 또다시 핍박을 당할 것으로 예언되었다. 그것이 특별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불들의 근원을 만드신" 하나님을 기억하여 예배하는 제칠일 안식일 준수와 연관된 사실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表徵)" (출 31:13)이라고 선언되어 있어 장차 강요될 "짐승의 표"와 상반(相反)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는 요한계시록 연구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18.세상 역사의 마지막까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예배를 끝까지 고수할 특별한 백성이 있을 것임에 대해 어떠한 언급과 약속이 있는가?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2).

 
▶ 마치는 말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의 존재와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 효도이다. 그것은 자식의 마땅한 도리(道理)이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의 기원과 자신의 생명의 근원을 인정하는 인격적인 행위이다. 효도할 때 자식으로서의 인간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이 확립되는 것이다.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인간은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다. 인간이 자신의 피조성(被造性)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성(人間性)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참으로 인간다워진다. 이처럼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의 속성(屬性)인 사랑에 반응하고, 그 분에게 합당한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worship]는 가치(價値 · worth)에서 나온 말이다. 예배는 인간이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리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거기에 인간의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예배하지 않는 인간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가치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배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깨닫는 인간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경험하게 된다.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절대적이기 때문에 무엇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거래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관계인 예배인 것이다. 그러한 예배가 참으로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한 예배가 참으로 가치 있지 않은가? 그러한 예배가 참으로 시급하지 않은가? 내가 바로 그러한 예배를 드려야 할 사람이 아닌가?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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