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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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과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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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7월 4일자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의 표지에는 “세계 3차 대전을 위한 계획”이라는 표제가 실렸다.
   구소련이 망하기 전  바르샤바 동맹은 순식간에 유럽을 파멸시킬 수 있는 핵전쟁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이미 집행 단계에 이르렀음이 노획된 “핵전쟁 아마겟돈 청사진”에서 공개된 것이다. 일어나기만 했다면 세상의 종말이 되었을 핵전쟁의 시나리오였다.  무엇이 21세기를 맞은 지구의 장래인가? 무엇이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선과 악의 대쟁투의 결말인가? 이미 지난 10장의 연구에서 시작된 세상의 마지막에 관한 다니엘의 마무리 예언이 이 질문에 놀랍도록 정확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1. 어떠한 배경에서 11장에 기록된 다니엘서의 마지막 예언이 계속되고 있는가?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상-개역한글]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단 10:14)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단 11:1).

  다니엘은 7장의 “한 때, 두 때, 반 때”에 관한 계시 이후부터 하나님 백성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7:28).  그 걱정은  8장의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이 주어지면서  더욱 깊어졌다(8:27).  9장의 “70이레”에 관한 예언을 통해 일부의 문제를 깨달았으나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라는 예고는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9:26 하단).  이제 10장에서 이 “큰 전쟁에 관한” 계시와(10:1),  “말일(末日)”에 “네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이 당할 일”이 상징이 아니라,  서술 형식을 통해 구체 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10:14). 이 계시를 전달하고 있는 천사는 자신이 다니엘이 기도 금지령을 어긴 탓으로  사자 굴에 던져지던 다니엘서  6장의 사건 때 다니엘이 살아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가브리엘 천사임을 스스로 소개했다.

2. 계시가 주어지던 당시인 페르시아의 초기부터 헬라가 일어날 때까지 어떤 역사가 계속될 것인가?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단 11:2).

  계시가 주어진 당시는 페르시아의 국부(國父) 키루스(고레스) 시대였으므로, 그 후에 페르시아에서 일어날 “세 왕”과  “넷째 왕”은 역사적으로 아래와 같다.

첫째 왕 : 캄비세스 2세-키루스왕의 아들로서 이집트 원정을 떠나기 전 유능한 동생 스메르디스(Smerdis)를 몰래 죽여 후환을 없애려 했으나 자신이 오히려 귀국 길에 변사(變死)했다.

둘째 왕 : 가짜 스메르디스(Smerdis)-캄비세스가 이집트 원정에 나간 동안 자신을 캄비세스의 동생인 스메르디스라고 사칭(詐稱)한 바르디야(Bardiya)가 왕위를 찬탈했다.

셋째 왕 : 다리우스 1세-가짜 스메르디스(Smerdis)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재위 2년에 중단된 예루살렘 성전 중건령을 내렸다.

넷째 왕 : 크세르크세스-다리우스 1세의 아들로 에스더의 남편인데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나온다. 4년간의 전쟁 준비를 끝내고 헬라를 완전히 파멸시키려는 기세로 대원정(大遠征)에 나섰으나 패전하였다. 그 후 몇 명의 왕이 더 일어나 헬라 원정을 계속했으나 오히려 파멸에 이르게 된다.

 

3. 헬라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어떤 특별한 인물이 등장할 것으로 예언되었는가?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단 11:3, 4).

  페르시아가 주도하던 헬라 정복의 끈질긴 시도는 마침내 헬라의 “한 능 력 있는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일어나면서 졸지에 역전되고 말았다.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던 헬라 반도를 통일한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는 3만 5천 명의 소수 정예부대를 이끌고 숙적(宿敵)  페르시아 정복길에 올랐다. 그는 헬레 스폰트(Hellespont) 해협을 건너 아시아로 진격하였으며 기원전 331년 페르시아 를 멸망시키고 내친 발걸음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한창 “강성할 그 때”인 33세가 되던 해 갑자기 요절하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의 대제국은 결국 다니엘서 7장의 표범의 머리가 넷이었듯이,또한 8장의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 현저한 뿔 넷”이 사방으로 뻗어나간 것처럼
유복자 외에는 후계자가 없던 상황에서 전혀 “이 외의 사람들”인 알렉산드로스의 네 부하장군들에 의하여 기원전 301년 입수스(Ipsus) 전쟁 이후 정확히 사분됨으로써 예언을 문자 그대로 성취시켰다.

 

4.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넷으로 나누어진 헬라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가?

 “남방의 왕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단 11:5).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네 장군들에 의해 사분  된 네 나라 가운데, 마케도니아와 헬라를 맡았던 카산드로스와 소아시아를 맡았던 리시마코스의 나라는 얼마 못 되어 종말을 고하고, [지도-기원전 275년경의 북방 셀레우코스 왕조와  남방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판도]에  제시된 지도에 나타난 대로 시리아 쪽 을 맡았던 셀레우코스 왕조(王朝)와 이집트를 맡았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王朝)가  맞대결 하는 남북왕조(南北王朝)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인 팔레스타인에 위치한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는 북방 왕이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는 남방 왕이었다.
  11장 5절의 최초의 남방 왕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 가운데 하나로 이집트를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Ptolemaeos I)이며, 그 “군(君)주들 중의 하나” 는, 한때 불리한 상황에 처하여 남방 왕 프톨레마이오스의  수하(手下) 에  있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진  첫 번째의  북방  왕  셀레우코스   1 세(Seleucus I)로서 시리아를 비롯하여 이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 표-7]은 그 이후의 근동 역사를 이끌어 간 남방 왕인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북방 왕인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를 대비(對比)한 것인데 다니엘서 11 장에 언급된 왕들만 뽑은 것이다.  성경에 이들의 존재와 역할이 예언을 통해 이처럼 상세히 언급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5.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는 처음에 서로의 공존(共存)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단 11:6).

  남북왕조의 대결은 다음 세대인 2세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었다. 처음에는 남방 왕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자신의 딸 베레니케를 북방  왕 안티오코스 2세와 혼인시켜 결혼 동맹을 맺음으로 화친(和親)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죽자, 남편을 베레니케에게 빼앗긴 안티오코스 2세의 전 왕후 라오디케는 남편 안디오코스 2세와 베레니케와 그들이 낳은 아들을 죽임으로써 보복하였다.

6.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싸움은 어떻게 더욱 치열해졌는가?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9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단 11:7~9).

  남방 왕 이집트의 새로운 왕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라오디케에게 죽임을 당한 베레니케의 오라비로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북방 왕 시리아를  정복한 후 수집해 둔 우상 2,500점을 노획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시리아 왕 셀레우코 스 2세는 응전(應戰)했으나 패배하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하고 귀국했다. 이 전쟁을 제3차 시리아 전쟁(BC 246~241)이라 한다.  그리고 9절은 BC 242년에 셀레우코스 2세가 애굽을 침공했으나 아무 소득 없이 시리아로 돌아간 것을 가리킨다.

7. 그 후에도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는 어떻게 끝없는 보복 전쟁을 계속했는가?

  10~12절은 역사상 있었던 제4차 시리아 전쟁을 예언한 것이다.  예언된 대로 남북왕조의 보복적인 대결이 계속되었는데, 이 사실을 예언한 성경절에 그대로 역사를 대입하여 예언의 정확성을 성경 본문에서 확인해보자.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11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준 바 되리라 12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단 11:10~12).

  위에 인용된 세 구절의 성경 예언은 북방 왕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 세의 군대 (보병 6만 2천, 기병 6천, 코끼리 102두)와 남방 왕 이집트의 프톨레 마이오스 4세의 군대(보병 7만, 기병 5천, 코끼리 73두)가 기원전 217년 라피아 (Raphia)에서 벌였던 대접전(大接戰)에 관한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에 의하여 미리 기록된 역사인 것이다. 이 제4차 시리아 전쟁에서 안티오코스 3세는 엄청난 사상자와 포로를 낸 후 패전하고 남방 왕의 승리로 끝났다.

8. 그동안 북방 왕 시리아와의 싸움에서 우세를 유지해 온 남방왕국 이집트가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가?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14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이상-개역한글]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단 11:13, 14).

  제4차 시리아 전쟁이었던 라피아 전투에서 대패한 북방 왕인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는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제5차 시리아 전쟁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전 영토를 대부분 탈환하는 전과(戰果)를 올린 후 남방으로 기수(驥手)를 돌려 이집트와의 재대결을 감행했다(13절). 이때 안티오코스 3세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5세(Philippos V)와 동맹을 맺어 세력을 보강한데다가 이집트 본토인들은 이족(異族)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통치에 저항하기 시작함으로써 남방왕국 이집트는 내우외환(內優外患)에 처했다(14절 상단). 기원전 198년 북방 왕 안티오코스 3세는 파내우스(Panaeus) 싸움에서 이집트에 승리함으로써 백 년 이상 남방 왕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 온 유다를 북방 왕 시리아의 속국(屬國)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제5차 시리아 전쟁이다. 여기서 “네 백성[유대인]의 파괴자들[the breakers of your people]”이란 말은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에 이어 유다를 침입하여 속국으로 만든 로마를 적절히 가리킬 수도 있다.

9.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의 마지막 숨가쁜 대결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단 11:15).

  셰이(W. H. Shea)는 15절을 안티오코스 3세에 이어 그의 아들 안티오 코스 4세가 왕이 된 후에도 남방 왕 이집트에 대한 북방 왕 시리아의 침략에 대한 예언으로 적용했다. 특별히 안티오코스 4세는 기원전 169년 이집트의 견고한 성읍 펠루시움을  함락시켜 삼각주 동부를 공략하는 길을 열었다.  겨울이 오자 그는 시리아로 퇴각했는데  그것이 북방 왕 시리아에 관한 마지막 언급이다.  놀랍게도 이 북방 왕은 “마지막 때”와 연관되어 11장 40절에 다시 나타난다. 15절 이 후에는 왜 북방 왕 시리아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지 그 이유가 16절에서 밝혀진다.


 

10. 세계 역사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헬라의 남북왕조의 싸움이 이렇듯 자세하게 예언된 까닭이 무엇인가?

 

  마지막 때에 관한 다니엘서의 마지막 계시가 주어지기 전, 다니엘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금식하며 알기를 원했던 주제는 시련으로 가득 찬 하나님 백성의 장래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말일(末日)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 가브리엘 천사가 보내져 지금 그 주제에 관한 계시가 12장까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 계시는 다니엘 당시인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헬라에 이르렀는데, 헬라가 북방의 시리아와 남방의 이집트로 양분 (兩分)되어  생사 대결을 벌이는 그 사이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가 끼어 있는 상황이다. 이미 페르시아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무서운 적의를 드러낸 사탄은 헬라  시대에 이르러서도  적개심에 사무쳐 보복을 계속하는 북방의 셀레우코스 왕조와 남방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싸움을 고조시켜 중간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일을 극 대화(極大化)한 것이다.

11. 실제로 북방왕국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 때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다니엘서 11장 15절에 예언상으로는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북방 왕인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는 20명의 시리아의 왕들 가운데 8번째 왕으로서 재위11년(BC 175년~164년) 동안 유다를 헬라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常煩祭)를 폐하고,  성전 앞에 우상의 단을 쌓고 돼지를 제물로 바쳤으며,  안식일과 할례를 폐하고 하나님 대신 제우스신을 섬기도록 강요했다. 이를 반대한 유대인들을 저항하지 않는 안식일을 택하여 무수히 죽였다. 마침내 유대인들이 시리아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와 함께  마카비의 독립운동이 일어나 끝내 독립을 쟁취했으나 기원전 63년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 탄생 시까지 그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예언을 통해  수백 년 전에 기록된 까닭은 그것이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게 될 유다의 운명에 직접적으로 관계돼 있기 때문이다.  안티오코스 4세의 이러한 악역(惡役) 때문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그를 다니엘서 8장의 작은 뿔로 해석하고, 11장 16~39절의 주역(主役)으로 해석하지만, 그것은 전혀 합당치 않은 해석이다. 왜냐하면 그는 북방 왕 시리아의  “마지막 때” 왕이 아니라(8:23) 20명의 왕들 중 8대 왕이며,  그는 “심히 커”진 왕국의 왕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에 의해 위축당한 취약한 왕이었다.  또한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유린한 기간도 엉뚱하게 적용한 2,300일이 아니라(8:14) 실제로는 3년 10일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이와 관련된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 당시 이후인 예루살렘 멸망에 직접 적용시키심으로(9:27) 그러한 헛된 주장의 여지를 없애셨다.

 

12. 헬라의 남북왕조 시대를 끝낸 신생 강대국 로마의 등장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 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단 11:16).

  앞서 연구한 11장 15절에서 북방 왕 시리아는 남방 왕 이집트를 거의 승복(承服)시킬 것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16절에서 갑자기 사태가 달라진다.  무적 (無敵)의 “와서 치는 자[침략자]”가 등장하여 세상을 뜻대로 다스린다는 직설적인 예언이다. 기원전 168년 안티오코스 4세가 아버지 안티오코스 3세의 유지(遊志)를 받들어 이집트로 진격해 가고 있을 때,  로마에서 특사가 와서 퇴각하라는 명령을 하자 그는 순응(順應)하는 길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기원전 168년 로마에 의해 알렉산드로스의 고국인 마케도니아가 망하고, 시리아가 이집트에서 퇴각하고,  이집트는 보호령이 됨으로써 헬라 시대는 끝나고 로마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로마는 기원전 64년 마침내 북방 왕 시리아를 정복한 후 로마의 일개 주(州)로 복속(服屬)시켰다. 이듬해인 63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Pompeius)가 “영화로운 땅” 으로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유린(蹂躪)하였으며, 12,000명의 유대인을 죽이고 로마의 속주(屬州)로 만들었다. 16절의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것이다.

13. 시리아와 유다를 멸망시킨 로마의 발걸음이 어떻게 이집트까지 이르게 되는가?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가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단 11:17).

  16절에서 예언된 대로 시리아를 거쳐 유대까지 이른 로마의 정복의 발걸음은 남하(南下)를 계속했다.  삼두정치(三頭政治)를 펼쳐온  크라수스가 전사하고,  폼페이우스와 율리어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반목하면서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패퇴(敗退)하자 율리어스 카이사르는 그를 추격하였고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집트에 오게 된 율리어스 카이사르는 거기서 프톨레마이오스 11세의 딸로 남동생과 왕위 다툼을 하던 22세의 클레오파트라를 만나 황홀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와 염문을 뿌린  “여자의 딸”(the daughter of women)은  “빼어난 여자”를 뜻하는 말로 세계사의 절세미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적합한 표현이다.
이때 왕위와 인간의 욕망을 함께 이루려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아들까지 낳은 터에 남편이 된 율리어스 카이사르를 따라 로마까지 갔으나 얼마 후 그가 암살당하자 그녀는 황급히 이집트로 도망쳐 왔으며, 결국에는 독사에 물려 자살하게 되는 비극의 여인이 된다. “그에게 무익(無益)하리 라”는 예언의 성취였다. 그것이 기원전 30년의 일로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과 함께 남방 왕 이집트도 끝나게 된다.

14.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운명에 관한 어떤 놀라운 예언이 기록돼 있는가?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그가 드디어 그 얼굴 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단 11:18, 19).

  50세가 넘은 율리어스 카이사르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를 의식하여 해안 길을 따라 귀국하였다.  그는 도중에 보스포러스, 북아프리 카, 스페인 등 적어도 세 곳에서 전쟁을 치르며 로마로 개선 입성하였다. 그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간결한 세 마디 메시지를 원로원에 보낼 만큼 원숙한 정치인이자 군인이 되어 있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는 결국 종신 독재관(獨裁官;Dictator)이 되어 로마의 1인 지배자로 득세하였으나 그의 거만함과 잔혹함은 자신의 머리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의 수욕(羞辱)을 씻을 대장”, 롱기누스 (G. Cassius Longinus)가 지휘하는  60여 명의 동료 로마인들은, 황제가 되려는 율리어스의 야심을 간파(看破)하고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에서 그를 무참하게 암살하여버린 것이다. “브루터스(Brutus), 너까지도···” 그것이 절친한 친구의 손에 죽은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이었다. 예언대로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게 된 것이다.

 

15. 율리어스 카이사르 다음에 누가 로마의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가?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요”(단 11:20).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된 사람은 그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이다. 그가 바로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Augustus Caesar, 아구스도)이다.  “토색(討索)하는 자”는  “세금을 거두는 자” (a raiser of taxes) 라는 뜻이다.  그는 인두세(人頭稅)를 거둘 목적으로 전국에 인구 조사에 해당하는 호적령(戶籍令)을 내렸는데,  이 일 때문에 나 사렛에서 살던 요셉과 만삭이 된 마리아가 자신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갔다가  거기서 아기 예수를 출산함으로써(눅 2:1~7), 미가서에 예언된 구주의 출생지에 관한 예언(미 5:2)을 성취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6.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이어서 로마 황제가 될 사람은 누구이며 그가 할 일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22 넘치는 물 같은 군대 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단 11:21, 22).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사람은 티베리우스 카이 사르(Tiberius Caesar)였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친아들이 아니라 그 와 재혼한 어머니 리비아(Livia)를  통하여 황실 가족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는 “당신의 아들이 로마제국의 자주 옷을 입기에는 너무 비열(卑劣)하다” 는 말로 리비아의 청을 거절했으나,  예언된 대로,  “평안한 때를 타서 궤휼로 나라를 얻”어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티베리우스 카이사르이다. 예언된 대로, 그는 독일을  비롯한 각처의  소요(騷擾)를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 압하여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   그런데 “동맹한 왕”도  그에 의해 같은 일을 당 할 것이라는 예언은 무슨 뜻인가?  “동맹한 왕”의  바른 번역은 “언약의 왕”(The prince of covenant)인데  똑같은 용어가 쓰인 곳이 같은 다니엘서 9장 24~27절로서” “언약을 굳게 정할”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가리켰다. 참으로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로마의 황제가 누구일지를 그 일이 있기 500여 년 전에 다니엘서 11장 의 계시를 통해 예언된 것이다.

 

17. 다니엘서에 예언된 대로 성취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 역사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다니엘서 11장의 연구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예언된 많은 사건들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연이 아니라 범죄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빗나간 지구 역사의 본궤도(本軌道) 재진입(再進入)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역사의 필연임을 확신하게 된다. 11장의 연구 마지막에 제시된 「역사의 의미, 내용, 목적은 도대체 무 엇인가」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자.

 

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의 선과 악의 싸움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의 다니엘서 11장의 연구를 통하여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헬라, 헬라 남북왕조 시대,  그리고 로마 시대에 접어들었다.  11장 22절에 이르러,  다니엘서 9장의 70주일에 관한 예언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신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께서 “언약”을 피로써 비준(批准)하기 위해(마 26:28)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언약의 왕”의 직분(職分)을 약속대로 수행하셨음을 확인했다. 이제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우리는 다니엘서에 기록된 세상 역사에 관한 예언이 [표-9]와 같이 사중(四重)의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다니엘서에 기록된 세상 역사에 관한 예언이 [표-9]와 같이 사중(四重)의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제부터의 성서 예언이 너무나 상세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나무 하나 하나를 관찰하다가 숲을 보지 못하여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언 해석의 안전을 보증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다니엘서의 예언이 지닌 독특한 사중 구조를 활용하는 길 이다. 즉 세상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관한 2장의 단순한 예언이 7장 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고, 8장에서 더 구체적인 초점에 맞춰 전개되고, 11장, 12 장에서 가장 서술적인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어, 서로 서로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전체의 개요(槪要)에 어긋나지 않는 해석을 보증받게 된다. [표-10]의 「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평행구조」를 참조하여 11장의 깊은 연구에 들어가 보자.

19. 11장 해석에 연관되어 제시된 「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평행구조」를 통해 어떠한 점들이 확인되었는가?

 제시된 다니엘서 예언의 정확한 사중 평행구조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시도한 예언 해석을 점검해 볼 때, 하나도 서로 어긋남이나 무리함이 없이 바르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별히 11장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22절까지의 내용과  31절부터 마지막까지의 내용은 뚜렷한 평행구조가  있어 상호  비교함으로 확실한 해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23~30절 사이의 내용은 평행구조에 자세히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새로운 내용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예언 해석에 있어서 신축성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확인된 또 하나의 사실을  11장의 내용과 가장 구체적인 평행을 이룬 내용이 8장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8장의 내용도 7장의 예언을 확대 해석한 것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20.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로써 예언에 나타난 역할을 끝낸 로마제국의 뒤를 이어 그와 유사한 일을 계속할 세력은 무엇인가?

  “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단 11:23).

 평행구조에 의하면, 7장의 넷째 짐승인 로마제국 다음에는 작은 뿔인 중세 교황권이 일어난다. 8장에서도 처음에는 작게 올라온 수평적인 뿔인 로마 제국을 이어서 “군대의 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해 수직적 활동 을 시작한 세력도 역시 작은 뿔인 중세 교황권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에서도 열 뿔 가진 무서운 짐승인 로마제국이, 여자가 낳은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후에 바로 등장한 세력은 중세기 1,26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여자)을 무섭게 핍박한 중세 교황권이었다(계 12:2~6). 그러므로 11장에서도 “언약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뒤에 이어서 등장하는 새로운 세력은 역시 중 세 교황권이어야 평행을 이루는 합당한 해석이 된다.

21. 헬라 시대 동안 치열하게 계속되어 온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싸움이 어떠한 새로운 체제로 재연되는가?

  “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단 11:24).

 북방 왕이었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고 하 나님의 백성인 유다를 무섭게 핍박하다가 기원전 64년에 망한 뒤에 들어선 또 다 른 북방 왕은 로마제국이었으며, 로마제국도 시리아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유린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무섭게 핍박했다. 그리고 서기 476년에 로마가 게르만민족에 의해 멸망을 당한 후에 그 뒤를 이 어 북방 왕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중세 교황권이었으며, 과거의 북방 왕이었던 시리아나 로마제국처럼 하늘의 성소를 훼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북방 왕의 역할을 계속했다(단 7:25, 8:11, 12; 계 12:6, 13:6, 7). 한편 남방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는 기원전 30년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당 한 뒤 그 지배를 받다가 서로마가 망한 뒤에는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인 사라센의 지배에 들어갔다.

22. 로마제국을 이어 새로운 북방 왕이 된 중세 교황권은 남방의 이집트 세력 을 어떻게 정복하려 했는가?

 “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칠 것이요.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계략을 세워 그를 침이니라”(단 11:25).

 중세 교황권은 성지인 예루살렘 순례(巡禮)를 구원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그런데 사라센에 이어 또 다른 이슬람 세력인 투르크가 예루살렘을 지배하면서부터 예루살렘 순례를 훼방하고 순례자들을 핍박하자 교황은 전 유럽을 총동 원하여  150년 가까이 계속된 십자군(十字軍)전쟁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탈환하 려 했다.
  그런데 당시의 예루살렘은 이집트에 근거를 둔 이슬람 지배 세력인 칼리프 [마호멧의 후계자]의 지배를 받았으므로 실제로는 북방 왕이 된 로마교황이 이집트에 근거한 또 다른 남방 왕을 공격한 것이다. 이렇게 일어난 제1차 십자군 (AD 1096~1099년)은 예언된 대로 “힘을 떨치고 용맹을 발하여 ‘남방 왕’의 세력을 공격하여 1099년 6월 15일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거기에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한 후 개선하였다. 그때 소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표방(標榜)한 십자군이 학살한 이슬람교도의 피가 ‘행인의 발목까지 적실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W. R. Cannon, History of Christianity in the Middle Ages, 172).

23. 그럴 듯한 명분(名分)을 앞세워 일으킨 비인도적인 십자군전쟁에 얽힌 이해관계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예언이 있는가?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그의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사람이 엎드러져 죽으리라 27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라”(단 11:26, 27).

  동기부터가 미신적이었던 십자군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신과 부패의 본질을 드러냈다. 참가한 왕들이나  나라의 이해관계가  저마다 달랐으며,   다수의 십자군은 약탈자와  장사꾼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두 왕이 한 밥상에 앉았을 때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예언처럼, 십자군의 지도자들인 그리스도인 왕들과 이슬람 지도자인 칼리프나 술탄 사이의 믿을 수 없는 약속과 조약(條約)들이 비참한 십자군전쟁의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Saladin)과 엄숙한 평화 협약(協約)을 체결해 놓고도 배신한 지도자 레지날드(Reginald)와 기 드 뤼지농(Guy de Lysignon)의 경우이다(Prerite-Orton, Medieval History, 529~531).

24. 실패로 끝난 십자군의 종말에 대하여 어떠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가?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 29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30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언약에 분노하였고 자기 땅에 돌아가서는 맺은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며”(단 11:28~30).

  10여 세의 소년들을 불러 모아 소년 십자군까지 일으키는 등 온갖 수단 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예루살렘 정복을 시도한 7차에 걸친 십자군전쟁은 때때로 승리하기도 했으나 마침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결과 중세 교황권은 약화되어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나게 되는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중세 로마 교황권이 십자군을 통해 시도했던 성지 탈환은 실패했지만, 의외로 동방의 문물(文物)이 서방에 전달되는 계기가 됨으로써,  직후에 유럽에서 문예부흥(文藝復興)으로  일컫는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해 양측이 모두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들로부터 배를 빌려 쓰게 되어 “깃 딤[서방]의 배”가 싸움에 동원되리라는 예언도 이루어졌다.  예언된 대로, 마지막 인 제7차 십자군은 모슬렘[이슬람]의 본거지인 남방 왕 이집트를 직접 침공했으나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마지막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프랑스의 루이 9세는 이집트 군에 포로가 되었으며, 몸값을 내고 겨우 살아  돌아갔다.   예언  된 대로,  십자군전쟁의  결과  북방  왕인  로마 교황권은  “ 낙심하고 돌아가”(11:30) 는  루이 9세의 모습처럼 사양(斜陽)길에 접어들게 되고, 잇달아 일어난 16세기 종 교개혁으로 깊은 곤경에 빠지게 된다.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기는  일에 박차를 가하는 역사를 이어지는 연구에서 확인하게 된다.

25. 북방 왕의 자리에 들어선 중세 로마 교황권은 어떠한 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성소와 백성을 훼방하게 되는가?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32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 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 라”(단 11:31, 32).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 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단 8:11, 12).

  시리아와 로마제국에 이어 새로운 북방 왕이 된 중세 교황권에 의해 하 나님의 성소와 백성에게 어떤 일을 일으키게 될지를 예언하고 있다. 11장 31절 과 평행구조를 이루는 8장 11절을 비교해 볼 때 이곳의 성소는 수직적인 작은 뿔이 공격하는 하늘 성소이며, “매일 드리는 제사[타미드]”로 표현된 하늘 성소의 끊임없는 봉사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수행하시는 봉사(히 4:14~16)인 것이다. 8장 연구에서 밝힌 대로,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하여 아직도 이 땅에서 행해지는 사제(제사장)제도, 고해성사, 제사인 미사(Mass) 성제(聖祭), 화체설(化體設), 마리아 중보 등은 모두 하늘에서 수행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를 “훼방”하고 “폐하는” 일인 것이다.

26. 이러한 북방 왕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시련을 겪으며 어떠한 반응을 하게 되는가?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 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33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 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단 11:32, 33).

  이 일은 다니엘서 7장(25절)에 나타난 작은 뿔에 의해 “한 때, 두 때, 반 때” 동안 성도들이 겪게  되는 핍박이나, 12장(7절)에 다시 언급된 중세기(AD 538~1798년) 동안의 성도가 겪을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12세기 초 북이탈리아에서 왈덴스인들이 일어나 죽음을 무릅쓰고 지방 어로 번역된 성경을 배포하고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비성서적인 교리를 전면 거부하고 진리를  가르치다가  십자군에 의해 무참한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예언 대로 “하나님을 아는 용맹한 백성”들이 일어난 것이다.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칠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 지혜로운 자들로  14세기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출신 위클립 교수를 비롯하여 철두철미(徹頭徹尾)한 개혁을 주장하고 가르치다가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진 보헤미야[체코]의 프라하 대학총장 허스(Huss), 교수 제롬 (Jerome), 이탈리아 수도승 사보나롤라(Savonarola), 영국의 틴데일(Tyndale) 등 무수한 사람들을 꼽을 수 있다. 중세기의 암흑(暗黑)이 한참 깊어 가던 16세기 초 독일의 루터(Luther), 스위스의 츠빙글리(Zwingli), 프랑스의 칼뱅(Calvin) 그 리고 홀란드의 메노 시몬(Menno Simmons) 등에 의해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일어나 예언대로, “몰락(沒落)할 때 도움을 조금 얻”었다.  그러나 잇달아 일어난 로마 가톨릭의 강력한 반(反) 종교개혁에 부딪혀  지리멸렬(支離滅裂)하여 결국 개혁 을 완수하지 못하고 교파만을 양산(量産)한 개신교로 정착되고 만다.
이러한 중세 교황권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일어나 죽음을 불사하고 불의에 항거했으며,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다가 불과 칼에 죽임을 당하리라는 생생한 예언이 성취됐다.

 

27. 북방 왕인 중세 교황권의 활동이 제한을 당하는 “작정된 기한”은 언제인가?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하단).

 다니엘서에 명확히 예언된 작은 뿔인 중세 교황권의 활동 기간은 “한 때, 두 때, 반 때”, 곧 1,260일(년)로 확정되어 있다(단 7:25, 8:19, 11:35). 그것은 6세기(AD 538년)에 시작되어 프랑스혁명이 끝나는 18세기 말(AD 1798년)까지 한정되어 있다. 결국 프랑스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부패한 왕권(王權)과 타락한 교권(敎權)이 무너지면서 중세기가 끝나고 근세사(近世史)가 시작된 것이다. - 99 쪽 참조. 한 때와 두 때와 반때 -

 

28. 마지막 북방 왕의 신성모독에 관한 어떤 속성들이 낱낱이 예언되어 있는가?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 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단 11:36).

 “그 왕”이 누구인가에 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있어 왔다. 하나는 35절에 언급된 “마지막 때”를 시작한 무신론적인 프랑스혁명 세력이라는 전제로 해석을 펼쳐 간다. 그럴 경우에는 40절의 “마지막 때” 에 남방 왕 이집트에게 찔림을 받는 북방 왕을 당시의 역사 상황에 적용하여 터키로 돌리게 된다.  그리하여 터키가 이집트와 싸우게 되고 이에 연루되어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가 참여한 당시의 복잡한 국제 정세에 맞추어 해석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 정세를 따르기보다는 본래 견지해 왔던 일관성 있는 해석에 따라,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 정관사까지 붙여진 36절의 “이 왕”을 새로운 프랑스혁명 세력이 아니라 앞서 소개된 중세 교황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보다 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북방 왕인 로마교황권의 역할과 성소 훼방, 성도 핍박, 진리 유린 등 일반적인 속성들은 이미 앞서의 31~35절에서 언급하였다. 이에 부가(附加)하여, 11 장 36절~39절에 기록된 마지막 북방 왕의 또 다른 속성들은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일과 신성모독이었다. 하는 일을 볼 때, 그것이 다니엘서 7장과 8장에 이미 소개된 마지막 북방 왕이요, 작은 뿔인 로마교황권임에 틀림없다. 다음의 몇 특 성을 대조해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9. 마지막 북방 왕의 구체적인 또 다른 속성들은 무엇인가?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38그 대신 에 강한 신[세력의 신-개역한글]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단 11:37, 38).

 “열조(列朝)의 신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표현이나, “아무 신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극도의 불경(不敬)을 드러내는 말로, 자신을 하나님의 지상의 대리자로 자처한 전통적인 교황권에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여자의 사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자의 최고의 관심은 자녀와 남편에게 있다. 여자가 자녀와 남편을 누리게 하는 제도가 혼인 (婚姻)이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라고 권면되었으며(히 13:4), “혼인을 금하”는 일을 합당치 않은 신앙의 속성으로 돌렸다(딤전 4:3).  독신(獨身) 제도를 교리로 택하여 결혼을 억압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요 생리(生理)의 법칙 에도 적합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대신 “강한 신[세력의 신-개역한글]”을 공경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는 배도(背道)한 교회를 음녀(淫女)로 표현했는데,  그 음녀는 나라를 상징 하는 짐승을 타고 있다(계 17:3). 교회가  영적으로  타락하면 하나님 대신 세속적인 권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것이 중세 교회가 보여준 정교(政敎)일치의 신조였으며 그 결과는 모두의 타락과 부패와 파멸이었다.  예배와 신앙 행사에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바친다는 말은, 타락한 교회를 묘사한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진 요한계시록의 음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계 17:4).

 

 

30. 다니엘서에 자주 나오는 “마지막 때”는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 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 나갈 것이요”(단 11:40).

 “마지막 때”(the time of the end)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드 케츠”인데 성경 전체에서 5번 나오는 특별한 용어로 아래와 같이 모두 8장 이후의 다니엘서 에만 나타난다.

 

  그런데 이 구절들을 평행구조와 문맥을 통하여 볼 때, 이 “마지막 때”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중세 교황권의 전성시대가 끝나는 “한 때, 두 때, 반 때”의 끝인 1798 년이다.  1798년 중세기의 상징인 교황 피우스 6세(Pius Ⅵ)가 프랑스 군사 정부의 베르띠에(Berthier) 장군에게 잡혀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옥사함으로써  중세기가 끝나고 근세사가 시작된다.  다니엘서의 “마지막 때”는 세상 역사의 근세사의 시작인 것이다.

 

  본래 남방과 북방의 개념은 이스라엘을 방위(方位)의 기준으로 한 표현이다.  다니엘서 11장에서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가 이스라엘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북방 왕(king of north)이 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는 이스라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남방 왕(king of south)으로 부른 것이다. 남방 왕과 북방 왕은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역사적으로 각각 남쪽과 북쪽에서 이스라엘을 압 박하고 고통을 주고, 때로 파멸을 가져온 적대 세력을 의미했다. 최초의 북방 왕은 바빌로니아이었으며(렘 1:15), 헬라의 남북왕조 시대에는 시리아가 북쪽에서 유다를 괴롭혔고 이집트는 남쪽에서 괴롭혔다.

  이러한 배경에서 다니엘서 11장 15절 이전까지의 남방 왕은 이집트였고 북방 왕은 시리아였지만, 그 후 시리아는 기원전 64년에, 이집트는 기원전 30년에 모두 로마에게 망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유다)도 기원전 63년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그리고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나라마저 없어졌으며, 실제로 신약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참 교회를 영적(靈的)인 이스라엘로 부르고 있다(롬 9:27; 갈 3:28, 29).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참 백성인 것처럼, 마지막 때의 남방 왕과 북방 왕도 모두 영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참 교회를 괴 롭히는 적대 세력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바빌로니 아가 문자적(文字的)인 바빌로니아가 아니라 영적인 바빌로니아인 것과 같은 경 우이다.

  따라서 마지막 때의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싸움은, 이미 확인된 다니엘서의 마지막 때인 “프랑스혁명 이후(AD 1798년 이후) 하나님의 참 교회를 대적하기 위해 등장하는 두 세력의 싸움”으로 보아야 합당하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의 북방 왕 은 누구이며 남방 왕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다니엘서 연구를 통해 살펴본 북방 왕의 계보(係譜)는 바빌로니아 → 남북왕조의 시리아 → 로마 → 로마 교황권으로 빈틈없이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의 남방 왕은 누구인가?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살펴 본 남방 왕의 계보는, 고대 이집트 → 헬라 남북왕조의 이집트 → 이집트에 본거지를 두었던 반 기독교적인 사라센(이슬람) 세력(단 11:25)으로 정리되는데 이것은 중세기 십자군전쟁 시대의 배경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서의 “마지막 때”인 “한 때, 두 때, 반때”, 즉 1,260년 기간이 끝나는 때의 “남방 왕”은 누구인가? 그 대답이 바로 요한 계시록 11장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 11:1~3).

 누가 읽어보아도 그 뜻이 분명한 내용이다. 즉 중세 교황권이 하나님의 교회와 참 백성을 짓밟고 있던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인 1,260년 동안, 두 증인인 모세와 엘리야로 표상된(계 11:6) 신, 구약 성경이 수난을 받아 상복(喪服)을 입고 예언하는 생생한 모습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기간이 마쳐가는 때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리라는 예언이 주어졌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계 11:7, 8).

  사탄의 세력이 지배하는 근원으로 알려진 무저갱(無底坑 · 밑바닥 없는 수직굴)으로부터 나라나 어떤 세력을 상징하는 한 짐승이 출현하게 되는데  그 짐승이 상징한 나라가  중세기 동안 작은 뿔인 교황권에 의하여 읽지도, 번역하지도, 소유하거나 가르쳐서도 안 되는 금서(禁書)로 수난을 겪은 두 증인인 신, 구약 성경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암흑의 중세기를 끝나게 한 역사적 사건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혁명이다. 프랑스혁명정부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그토록 적대적이었는가?  전적으로 그렇다. 왜 냐하면, 프랑스혁명은 부패한 구체제의 왕권(王權)과 타락할 대로 타락한 교권(敎權)에 대한 민중의 항거였기 때문이다. 혁명 즉시 국왕 루이 16세 부처(夫妻)를 단두대에 처형했으며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거나 추방했고 당시의 80세 고령의 교황 피우스 6세(Pius Ⅵ)도 발렌스 감옥에서 옥사시킨 것이다. 1793년 혁명의회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를 폐지하고 성경을 금지한다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결과는 기나긴 중세기 동안 중세 교황권이 뿌린 씨앗을 열매로 거둔 것이다.  중세 교황권이 잘못 드러  낸  하나님과  교회와  성경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너무  컸으므로  볼테어(Voltaire) 와   루소(Rousseau), 페인(Paine) 등에 의하여 대담한 무신론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성경은 그것을 세계  사의 일대 지진이라고 예언했다(계 11:13).
 “프랑스혁명은 공산주의라고 하는 또 하나의 현존하는 유산(遺産)을 남겼다. 마르크스(Marx)는 공산 주의를 규명하기 위해, 레닌(Lenin)과 트로츠키 (Trotsky)는 1917년 볼쉐비키혁명을 준비하면서 프랑 스혁명의 전 과정을 세밀히 분석했다”(C. M. Maxwell, God Cares, Vol. 2, 284). “프랑스혁명이 앞서  발생하지 않았던들 공산주의 운동이 현재와 같은 양상을 결코 띠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R. R. Palmer, The Age of Democratic Revolution, vol. 1, 11, 12). "마르크시스트 역사가들은 1789년 프랑스의 부르주아혁명이 19세기 유럽에서의 연속적인 혁명적 요소를 불러일으켰다고 정리하고 있다.  부 르주아혁명은  1848 년  3월 프랑스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나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혁명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했다”(“프랑스혁명 200주년”, 주간 한국, 1987. 7. 22.).   “그 증인들이 죽임을 당하여 그 시체가 거리에 놓여 있는 그 큰 성은 영적으로 애굽(이집트)이었다. 성경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나라 가운데서 애굽처럼 대담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존을 부인하고 그분의 명령을 거역한 나라는 없었다(출5:2). 그것은 무신론이었다”(엘렌 G 화잇, 각 시대의 대쟁투 하, 446).      결과적으로  다니엘서 11장의  “마지막 때”를 시작한 사건은 프랑스혁명이며 그것은 영적인 남방 왕 애 굽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성경은(계 11:8) 못박고 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적인 기초는 공산주의를 탄생시킨 무신론이다.

 

 

31. 영적인 북방 왕인 중세 교황권과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영적인 애굽이요 남방 왕인 프랑스혁명 이념 세력인 무신론의 대결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단 11:40).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다르고” (계 13:2, 3).

 남방 왕이요 영적 애굽인 무신론적 프랑스혁명 세력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은 북방 왕 교황권은 신속히 회복되어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을 뿐더러 일대 반격을 가하여 회리바람이나 홍수같이 세상을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 이라고 예언되었다.  과연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세속권(世俗權)과 종교적 위엄과 영토까지 모두 상실한 로마 교황권은 재기(再起)에 전력을 다했다.  많은 부작용 때문에 한 때 폐지했던 예수회를 부활시키고, 1929년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정권과 라테란조약을 체결하여 잃었던 교황령(敎皇領)  바티칸을 다시 찾고,  1961년 개신교 종주국(綜主國)인  미국에서 최초의 가톨릭 대통령[케네디]을  당선시키면서 급속히 기반을 굳히고 넓혔다.  그리하여 지금은 예언된 대로,  “온 땅이 이상히 여겨” 따르는 세계적인 지도력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41절의 “영화로운 땅”도 이 제는 실제의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영적인 “영화로운 땅”으로서,  영적인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참 백성의 영역까지 주관할 만큼 막강해짐을 뜻한다.

32. 심지어 누구까지도 북방 왕의 세력에 압도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가?

 “그가 여러 나라들에 그의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하지 못할 것이니 43그가 권세 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단 11:42, 43).

  무신론적인 프랑스혁명에  의해 받은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현대 북방 왕인 교황권은  “열국(列國)에 그 손을 펴” 온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언되었는데 제삼(第三)세계를 대표하는 아프리카의 리비아와 구스[에티오피아] 까지도 그의 세력에 복종할 것이며, 마침내는 지난날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무신론 국가들도 포함될 것이며,  그 가운데는 소련도 예외가 아니라는 놀라운 예언이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발생한 무신론적인 공산혁명이 러시아(1917), 북한(1945), 중국(1949), 쿠바, 에티오피아, 중남미 등 전 세계로 번지면서 가장 위협을 느낀 것은 교황권과 미국이었다. 그동안 종교적 이념과  과거사 때문에 외교 관계도 맺을 수 없을 만큼 공존(共存)이 불가능했던  미국과 교황권은 공동의 적인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대항하기 위해 1984년 최초로 대사(大使)를 교환하는 외교 관계 를 수립하였다.그리고 비밀리에 레이건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의 노조운동을 계기로 동구(東毆)와 소련에서의 공산 세력을 붕괴시키기로 협약하고(1982. 6. 7.)  그 계획을 착실히 수행해 나간 끝에 동독을 비롯한 동구의 공산권이 무너졌으며, 마침내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졸지에 붕괴되기에 이르렀다(1991.12.). 공산주의 초강대국인 소련이 지도에서 사라진 것이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맹 체결의 결과로 이루어진 공산주의 붕괴에 관한 기사』

- TIME, Feb. 24, 1992 -


      이 성사(成事)가 미국과 교황권의 합작이었 음에 대해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는 그것을 가장 위대한 “신성동맹(神聖同盟·The Holy Alliance)”이라고 칭했다(1992년 2월 24일자). 개신교국 미국과 교황권의 이러한 파격적인 연합 관계는 마지막 때에 관한 중요한 사건으로 이미 그 사실이 성경의 예언에 나타나 있다(계 13:11~14). 그렇게 막강했던 공산 세력이 교황권에 의하여 이렇게 쉽사리 무너질 것임을  성경은 다니엘서를 통해 거의 2,600년 전에 예언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33. 현대의 교황권은 어떠한 방법으로 세계의 지도력을

     확보하고자 하는가?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17:2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 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계 17:2).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라는 예언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제(經濟) 전략을 뜻하기 때문이다.  영적 이집트인 무신론적인 공산권의 붕괴는 경제의 몰락 때문이었다. 계시록 13장에 기록된 대로, 거짓 예배를 강요하는 수단도 역시 짐승의 표(標)로 표현되는 “매매(賣買)를 못하게 하”(계 13:17)는 경제 통제인 것이다.
 또한 세속적인 정치에 깊이 관여하여 “땅의 임금[정치적 지도자]들”과 밀접한 이해관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창(主唱)하고 포도주로 취하게 하듯 자신의 신조와 통치 이념을 고취시킬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모두 현실이 된 놀라운 예언이다.

 

34. 마지막 북방 왕인 교황권이 세계의 지도력을 거의 장악할 무렵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단 11:44).

  이처럼 세상의 대권(大權)을 장악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영적인 북방 왕을 번뇌케 할 뿐만 아니라 분노하여 살육(殺戮)까지 감행하게 할 놀라운 소문이 동북(東北)에서부터 오게 된다는 예언이다. 이곳의 “소문”은 “소식”, “기별” (tidings)로 번역되는 말이다.

 

35. 북방 왕을 분노하게 할 “동북에서부 터 오는 소문”은 무엇을 뜻하는가?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 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8:1~3).

  본래 해 뜨는 동쪽은 하나님의 사자가 오는 곳으로(계 7:2, 사 41:25), 예 수님이 나타나는 곳의 상징이다(겔 43:1, 2; 시 48:2). 북쪽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는 곳(사 14:13)이다.  이 모든 것을 조 합해 볼 때  “동북에서부터 소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게 확실하다. 또한  세 천사의 기별(계 14:6~12)로 적용할 수도 있다.  이 기별이 늦은비 성령의 능력 으로 힘있게 전해질 때에 온 세상이 그 영광으로 환하여지게 될 것이다. 왜 이 기별에 대하여 북방 왕이 그렇게 분노할까? 그 기별의 내용이 바로 본래의 북방 왕의 표본(標本)인 영적 바빌로니아의 죄상(罪狀)을 공개하고 교황권의 파멸을 알리는 심판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13:13~15).

36. 북방 왕의 마지막 시도와 운명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 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단 11:45).

       역대 북방 왕들의 시도는 하나님의 성소를 훼파하는 일과 하나님의 백 을 박해하는 일이었다. 마지막 북방 왕인 교황권의 과거도 그랬고 앞으로도 동일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남은 백성을 대적할 때 용(龍)은  “바다 모 래 위에”섰다(계 12:17).   다니엘서 11장 45절의   “영화롭고 거룩한 산”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다(시 48:1, 2). 시온산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서기 70년 하나님의 성전과 백성이 있는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우상의 군기(軍旗)를 펄럭이며 포진(布陳)하는 광경을 상상하시며, 예수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그 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마 24:15)고 권면하셨다. 그 때 예루살렘은 시리아를 이어 북방 왕이 된 로마에 의해 함락되었지만, 마지막 싸움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으로 마지막 북방 왕인 교황권의 세력이 붕괴될 것이다.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 (45절) 을 것이기 때문이다(계 17:16).

 
    참으로 길고도 험난한 역사의 여정(旅程)이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조 류(潮流) 속에서 온갖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며 예정된 역사의 목적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 위에 엄연히 존재해 왔음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그 것은 계획하신 것을 끝까지 성취시키시는, 역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통치 의지(意志)의 빈틈없는 표현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구속사관(救贖史觀)이다.  다니엘이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세상 역사 속의 하나님의 백성의 여정을 우리는 낱낱이 살펴보았다. 그것은 노스트라다무스의 기록처럼 막연하거나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 방법으로, 가장 역사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그리고 다니엘서의 네 번째이며 마지막  예언이 취급한 범위가 너무나 넓고 깊고 분명 했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는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확실한 미래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시다.
  문제는 나와 역사(歷史)이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구속사관(救贖史觀)을 이해하고 이를 위해 살면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주역(主役)이 되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낱 역사의 조역(助役)이 되어, 역사의 장면이 바뀌면 퇴장하여 한줌의 흙이 되고 마는 덧없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 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영원한 생사의 갈림길이다. 지금이 바로 그 생명의 길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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