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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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영원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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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은 11장의 연속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다니엘서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니엘서의 서론인 1장이 시작될 때 지리적(地理的)으로 북방 왕이었던 바빌로니아가 영화로운 땅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는 비극적인 역사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또다시 최후의 영적 북방 왕이 영화로운 산인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와 백성을 공격해오는 모습을 예언으로 조명(照明)했다. 그러나 이번의 결과는 전과 판연(判然)하게 다르다.  그때의 육신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과 불성실로 바빌로니아에 짓밟히고 끌려갔지만,  지금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계 12:17)이 있어서 사자굴 속의  다니엘처럼, 풀무불 속의 세 친구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지구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철두철미(徹頭徹尾)하신 계획을 끝내 이룰 것이다. 그들이 바로 역사의 주역(主役)이요, 마침내 이 땅의 영원한 주인이 될 것이다.

 

1.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은 어떠한 극적인 주제로 시작되는가?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단 12:1).

  “그 때에”는 11:45의 사건이 일어나는 종말의 때, 즉 북방 왕이 끝에 이 르지만 그를 도와 줄 자가 아무도 없을 그때를 가리킨다. 교황권의 세력이 사라 질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   그 재림을 두고 “네 민족을 호위(護衛)하는 군주 (대군) 미가엘(Michael)이 일어날 것이요”라 하였다.  미  가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 은가(Who is like God?)”라는 뜻이며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말이다.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 장의  봉사를 마치실 때에 왕의 의관(衣冠)을 갖추시고 성소에서 나와 재림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미가엘이 언제 일어나는가? 재림 전 심판이 끝날 때에, 은혜의 시기가 마칠 때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고 선포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시어 아버지께 나아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시고(7:13, 14),  그 나라를 성도들에게 주시기 위해 재림하실 것이다. 그런데 재림 직전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그의 사업을 마치고 일어나서 복수의 옷을 입으시고 나오실 때에 비로소 마지막 일곱 재앙이 부어질 것이다.  바로 그때 야곱의 환난이 시작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고 하였다. 이것은 창세기 31:43~32:32의 야곱의 경험을 표상하여 일컫는 환난이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께 매어달릴 수밖에 없었던 진퇴유곡에 처했던 경험이었다.  이 같은 경험을 예레미야는 야곱의 환난이라고 예언하였다(렘 30:5~9).
그때에 “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책은 무슨 책인가. 바로 7장 9~13절에서 이미 그 장면이 소개된 재림 전에 있을 조사심판의 때에펼쳐지는 책, 곧 생명책이다. 그것은 성도를 옹호하기 위해 베푸시는 심판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 심판이 시작되는가? 그것이 우리가 8장에서 연구한 “2,300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해지리라”(8:14)는 말씀의 뜻이다. 그것은 1844년 부터 하늘성소의 둘째 칸인 지성소에서 시작된 대속죄일의 마지막 장면인 것이다.

2.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때에 어떤 특별한 일이 있게 되는가?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로 부여되는 영생(永生)은 예수께서 재림 하실 때 부활을 통하여 비로소 누리게 된다. 사람이 죽는 즉시 몸을 떠난 영혼이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이다. 그것은 사탄의 처음 거짓말인 영혼불멸설에 기초한 것이다(창 3:3, 4).   부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요 (요 5:28, 29, 11:24),   사도들의 가르침이며 (살전 4:13~18; 고전 15:35~44, 51~54),  지금 다니엘이 가르치고 있는 진실이다. 부활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속죄(贖罪)함을 받은 의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참여하는 “첫째 부활”이 있다(계 20:5, 6; 살전 4:13~18).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이 재림이 있 은 지 천년 후에 불로 소멸되는 심판을 받기 위하여 참여하게 되는 “둘째 부활” 이 있다(계 20:5, 6; 요 5:28, 29). 그래서 첫째 부활을 “생명의 부활”, 둘째 부활 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부른다(요 5:28, 29). 그런데 다니엘서 12장 2절에는 재림의 때에 영생을 얻기 위하여 부활하는 의인들과 함께 “수욕(羞辱)을 받아서 무궁(無窮)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포함되어 있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예외 에 대하여, 예수께서 이미 사례를 설정해 놓으셨다.    그분께서 자신을 재판한 파렴치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참람(僭濫)된 언사(言辭)와 처사(處事)를 듣고 보신 뒤, 주변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人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고 하셨다.  둘째 부활에 참여하여야 할 죄인이 어떻게 살아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도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의 부활은 우선 목적부터 다르다.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토록 조롱하고 모독한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똑똑히 알 수 있는 참관 (參觀)의 기회를 갖게 될 뿐이다. 이러한 유(類)의 사람들을 위한 부활을 특별부활(特別復活)이라고 부른다.

3. 세상의 역사가 종결되는 이 심각한 시간에 가장 큰 명예와 영원한 영광을 누릴 사람들은 누구인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다니엘은 지식(知識)뿐 아니라 지혜(智慧)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혜 있는 자”의 본뜻은 “분별력이 있는 사람”, 혹은 “분별력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다. 지혜는 지식을 바르게 활용할 줄 아는 정신적 기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별처럼 빛났던 다니엘의 일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明哲)”(잠 9:10)임을 자신의 생애로 실증(實證)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세상의 칭송과 인기를 독차지하는 “스타(star)”가 되고 싶어 한다. 스타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가.  그러나 세상의 명예나 영광은 너무나 무상(無常)하여 오늘의 스타가 내일에는 별똥이 되고 만다.  그러나 여기 영원한  스타가 되는 길이 있다. 그것이 바로 죄 때문에 길을 잃고 진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주(救主) 예수께로 인도하는 일이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인간을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일은 그 자체가 스타의 생애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생애는 그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다니엘이나 세 친구와 같은 청소년을 교육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표본이다.

 

마지막 때까지 인봉된 책 

 

4. 마지막 계시를 마치며 다니엘은 자신이 받은 계시에 대해 어떠한 지시를 받는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다니엘은 자신이 받은 계시의 어떤 부분은 마지막 때가 될 때까지 인봉 (印封)하여 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가 받은 계시의 전체인가, 아니면 일부인가? 우리는 다니엘이 받은 계시 혹은 이상 가운데  두 종류가 있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하존(chazon)”이라고 하는 형식의 계시인데,  성령의 감동 을 받아 “뇌 속으로 이상을 받”(단 7:1)는 일반적인 계시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시  가운데 다시  그리스도나 천사 등 거룩한 존재가 직접 나타나 기별을 전하는 “계시 중의 계시”, “이상 속의 이상”이 있다.  일종의 극중의 극과 같은 것인데 이러한 계시를 히브리어로 “마레(mareh)라고 한다. 이때는 언제나 거룩한 존재가 나타나고, 강이나 바다 같은 배경이 마련된다. 다니엘서에 쓰인 첫 번째 “마레” 계시는 2,300주야 문제가 소개된 경우였다(단 8:15, 16). 그때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리고 가브리엘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이상(마레)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단 8:16)는 명령이 내린다. 이것은 “정한 때 끝(에드 캐츠)”, 곧 “마지막 때”에 관한 계시였다. 다니엘이 끝까지 깨닫지 못한 계시는 바로 2,300주야에 관한 해석이었다. 9장의 계시를 통해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깨닫게 되었지만(단 9:25), 아직도 그 구체 적인 내용은 깨닫지 못한 채 마지막 계시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 내용이 다음의 5~9절에서 계속 다루어진다. 곧 2,300주야에 관한 “마레” 계시이다.

5. 이러한 상황에서 또다시 마지막으로 어떠한 계시(마레)가 주어지는가?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6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7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단 12:5~7).

  지난 8장에서 그리스도와 가브리엘 천사가 강을 배경으로 나타나 계시 한 2,300주야에 관한 해석이 다시 한 번 같은 배경의 계시를 통해 제시되었다. 세마포 옷을 입으신 분으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아버 지께 양손을 들고 서약하신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이 기사(奇事)”(단 8:13),   곧  하나님의 성소와 백성의 운명에 관계된 2,300주야에 관한 기사의 끝이 어느 때  까지냐는 질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은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가 지나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진 후에야 그 끝이 오게 된다는 대답이었다.  그것은 8 장 17, 26절에서 다루어진 2,300주야에 관한 질문의 반복이었다.
   다니엘서  7장의 연구에서 이미 밝혀진 대로,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조사심판은 반드시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  중세 교황권의  활동 기간인 중세기 1,260년 기간의 끝인  1798년보다 나중에 오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심판은 언제나 “끝”에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히 9:28).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는 중세기 1,260년 기간이 끝나는 1798년 이후가 되는 것이다.

6.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그 계시의 내용을 깨닫지 못하자 다시 어떠한 지시가 내려졌는가?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 나이까하니 9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 할 것임이니라”(단 12:8, 9).

    결국 8장에서 그 계시가 주어진 이래 완전히 깨닫지 못하여 계속하여 속 태우던 2,300주야의 끝에 관한 문제는, 그 계시를 받은 다니엘조차도 모두 깨닫지 못한 채 끝을 맺게 된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 라는 지시였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끝까지 깨닫지 못한 채 마지막 때인 1798년 이 후까지 보류해  두어야 할 계시는 다니엘서 전체가 아니라, 다니엘서 8장에서 주어진 2,300주야에 관한 “마레” 계시인 것이 자명(自明)해진다.

7. 그렇다면, 왜 2,300주야 계시에 관한 분명한 이해를 마지막 때 이후로 미루었는가?

  비록 그 직접적인 대답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이유는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이 구약시대의 최대의 관심이요 역사의 목표였다면,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은 세상 역사의 종결이요, 역사의 절정이기 때문에 그 의의(意義)와 심각성은 견줄 데가 없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는(계 22:12) 선악간의 보상(報償)이 집행되는 때이다. 재림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마지막이다. 재림은 질병과 고통과 죄와 사망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해결책이시다(계 21:4~7). 그리고 초림의 목적과는 달리 재림은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히 9:28) 오기 때문에 속죄에 관한 문제는 재림 전에 모두 종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죄가 성소로부터 완전히 제거됨으로써 성소가 죄로부터 정결해 지는(단 8:14) 대속죄일 행사가  끝나기까지는 재림하실 수가 없으시다(레 16:29, 30).  2,300주야[년] 기간이 끝나는 1844년 이전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수가 없으신 것이다.  속죄의 봉사를 끝내기 전에는 재림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다니엘을 비롯한 예전의 성도(聖徒)들이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늘 깨어 기다리는 긴박한 심정으로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건전한 긴장(tension) 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이 죽을 날을 모르고 사는 것이 유익하듯이,  재림의 시기를 알지 못하고 믿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연약한 인간을 위하여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판이 곧 시작되는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봉되고 봉함했던 구원의 시간표를 공개하심으로 능히 그 지식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다. 또 사실 그렇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10장에는 인봉된 다니엘서의 마지막 계시가 펼쳐지는 똑같은 배경과 장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어떤 다른 일정(日程)도 유보(留保)된 것이 없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또다시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서약하는 극적인 장면이 나온다(계 10:1~7).  지금 우리가 이렇게 다니엘의 마지막 계시를 막힌 것 없이 연구할 수 있는 것도 다니엘서가 개봉(開封)되었기 때문이다.

 

8.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에 “마지막 때”를 식별할 수 있는 적어도 두 가지 특징이 제시되어 있다.  교통수단의 급진적인 발달과 지식의 급격한 증가이다.  예언을 통해 제시된 “마지막 때”인 1798년의 상황이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이 시기는 인류 역사상 “제2의 물결”로 알려진 산업혁명 시대로 온 유럽이 새로운 지식과 교통수단의 발명으로 들끓고 있었다. 우선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인한 교통수단 의 급진적인 발달을 예시해 본다.

  뿐만 아니라, 중세 교황권의 몰락으로 신앙과 양심, 출판과 학문의 자유를 누리게 된 유럽은 새로운 지식 사회로 급변하고 있었다.

  특별히 18세기 말에 걸치는 이 시기에 적어도 몇 개의 혁명이 겹쳐 일어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대이다.

  이처럼 이 시기는 격변의 때로 과학적 지식과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성경에 관한 지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1830년대에 미국의 침례교 신자 윌리엄 밀러(W. Miller)에 의해 초교파적인 재림운동이 일어났다.

 

9. “마지막 때”에 관한 계시를 종결지으며 어떠한 예언적 기간들이 강조되거나 부가되었는가?

   지금까지 다니엘이 그토록 관심을 가져온 “마지막 때”와 “2,300주야” 문제, 그리고 이 기간과 연관되어  하나님의 성소와 백성이 겪게 될 온갖 경험에 관 한 마지막 계시를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마지막 때”의 기준 연대(年代)인 “한 때, 두 때, 반 때”,   곧 1,260년 기간이 “반드시”라는 말로 재확인 (再確認) 되었다.    그리고 이에  연관하여 두 개의 보조적인 예언적 기간인 1,290일(년)과 1,335일(년)이 부가(附加)되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예언상의 1일에는, 1,260일의 경우처럼 실제의 1년을 가리키는 「연-일 원칙(year-day principle)」이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그 연대를 하나씩 살펴보자.

 

 

10. “마지막 때”의 기준 연대인 “한 때, 두 때, 반 때” 곧 1,260년 기간의 의의와 특징은 무엇인가?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단 12:7).
 

  성경 본문에 나타난 대로 이 기간의 특징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 는 핍박(逼迫) 기간이다(단 7:25, 11:32~35, 12:7). 엘리야가 이세벨에 의하여 혹 독한 시련을 겪던 표상적(表象的)인 “삼년 반”의 의미가 내포된 기간이다. 1,260년 기간(AD 538~1798)의 끝인 1798년은 “마지막 때”의 기준 연대로 요한계시록에도 그 기간이 5회나 나와 있어 기준 연대로서(계 11:2, 3, 12:6, 14, 13:5)의 의의 (意義)를 드높이고 있다.

 

11. 1,290년 예언 기간의 의의와 특징은 어디에 있는가?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일을 지낼 것이요”(단 1 2:1 1).
 

  매일 드리는 제사 즉 타미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사역하시는 매일의 중보사역을 말한다. 그것을 폐하며라는 문구는 작은 뿔의 세력이 그리스 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매일의 중보사역을 찬탈하는 것을 말한다. 미사와 고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빼앗김을 당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참회자의 죄를 사(赦)하는 사죄권을 행사한다.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하늘 대제사장의 기능을 퇴색시킨 로마교황권의 거짓된 종교 제도가 세워지는 것을 가리킨다(9:27). 예를 들면 미사제도, 고해성사, 화체설, 마리아 숭배, 교황 무류설, 주일성수 등이다.
 “마지막 때” 곧 “정한 때의 끝”은 여러번 반복 설명한 대로 1798년이다.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에게 1,260년의 기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 1,290일의 기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앞서의  1,260년 기간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기간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따라서 1,290년은 1798년을 넘어서서는  안 되기 때문에 1,260일의 기산점인 AD 538년보다 30년 먼저 시작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1798년을 1,290년의 기산점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아닌 것이다. AD 1798년으로부터  역산(逆算)해  보면 1,290년 기간의 기산점은 AD 508년이 된다  (1,798-1,290=508).  그러므로 1,290년 기간은 AD 508년부터 1798년까지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서기 508년에 이에 해당하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중세 유럽 역사에서의 508년은 의미심장한 해이다. 서기 476년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의 부족들 가운데 강력한 부족은 프랑크(Frank)였다.  이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Clovis)는 자신이 496년 게르만족의  다른 부족인 알라마니 (Alamani)와  생사를 건 싸움에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한 데 대한 감사로 그의 병사 3천여 명과 함께 집단으로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改宗)하였다. 그 일로 “로마교회의 맏딸” 혹은 “맏아들”로 취급받았다.
  그가 최초로  기독교로 개심한 이방인 왕이 된 것이었다. 클로비스가  침례 받고 가톨릭교도가 된 것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로마가 클로비스를 통해 유럽의 중심에 위치했던 고울 지역을 통치하게 된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클로비스가 아리안주의자들을 몰아 낸 것이기 때문에 로마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환영할 만한 신학적 승리였다.  결국 그는  AD 508년 동로마의 아나스타시우스 1세(Anastasius I) 황제로부터 로마의 귀족과  집정관(consul)의 칭호를 받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클로비스가 고울의 통치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클로비스는 511년 11월 27일 죽어 사도들의 교회 안에 묻혔다.  프랑크의 클로비스가  획기적으로 로마교회로 전향한 것은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다른 모든 게르만민족은 로마교회가 적대시한 아리우스파의 신앙(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함)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요, 교황권 확립에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프랑크는 로마교회에 대대로 충성을 다하였다.  프랑크의 피 핀은 롬바르드족에게서 빼앗은  중부 이탈리아의  라벤나 지방과 펜타폴리스의 영지를  754년 1월 6일에 헌납하여 교황령이 되게 함으로 교황권이 최초로 영토를 가진 교회국가가 되게 하였다. 이에 대한 감사로 교황 레오 3세는 AD 800년 크리스마스에 피핀의 아들 프랑크의 샤를르마뉴(Charlemagne, AD 768~814)  대제에게 관을 씌워줌으로 신성로마제국을 탄생시켰다. 이리하여 신성로마제국은 교황권의 보호자가 되었다

 

12. 1,335일 기간의 시작과 끝은 무엇이며 어떤 의의가 있는가?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단 12:12).
 

  이제 또 하나의 예언적 연대가 마지막으로 부가되었다. 1,335일(년)이다.  우선 이 기간의 기산점이 별도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문맥으로 보아 직접적으로 앞 기간의 시작인,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 (12:11)부터임이 합당하다.
  그리하여 [508+1,335]는 1843년에 이른다.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는 2,300주 야 기간과 일치하는 연대이다. 실제로 2,300주야 계시가 주어진 8장에서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라고 묻는  질문에 대해  “2,300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 (8:14)는  대답이 주어졌으니 2,300주야의  끝은  실제로 1844년이었다.
  1844년과 1843년 사이의 1년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실제로 요한 계시록 14장 6, 7절에 기록된 첫째 천사의 기별, 곧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 주야 예언에 기초한 심판의 기별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1843년부터였다(엘렌 G 화잇, 초기문집, 232~237, Testimonies to Ministers, 112~118).
  뿐만 아니라 에스라 7장 7절에 근거하여 기원전 457년에 시작된 2,300주야의 끝이 1844년 10월 22일이 된 것도 그해의 대속죄일인 유대 성력(聖曆)의 7월 10 일이 양력으로는 10월 22일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레 16:29, 30).  실제로 가을부터 가을까지를 한 해로 치는 달력을 사용한 유대 민력(民曆)에 따르면, 다니엘서 8장 14절, 2,300년의 마지막 해는 1843년 가을부터 1844년 가을까지 포함하게 된다. 그러므로 1월부터 12월까지를 1년으로 하는 로마력(曆)으로 계산하는 지금의 연대와는 실제로 3개월 이상이 겹치게 되어, 1843년과 1844년의 차이는 심각히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

13. 1,335년의 예언적 기간에 이르는 사람은 왜 복이 있다고 했는가?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3 너는 가서 마지 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단 12:12,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이상의 두 성경 본문은 문맥과 구성 때문에 서로 일치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모두 2,300주야에 기초한 심판과 세상의 마지막을 설명하고 선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왜 이 기간에 이르는 사람은 복이 있는가. 그 대답은 다니엘의 고뇌에서 찾게 된다. 그 기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당해야 할 시련과 고통, 진리를 위해 치러야  하는 엄청난 대가인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沒落)” (단 11:33)하게 될 쓰라린 역사가 모두 지나간 후이며, 마침내 아래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특권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

  이 약속은 다니엘서 8장 14절에 기초한 세 천사의 기별(계 14:6~13), 곧 “영원한 복음”인 심판의 기별(계 14:6, 7)을 듣고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도 약속된 보증이다(계 14:13).

 

 

14. 다니엘에게 어떠한 영원한 보상이 약속되었는가?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3너는 가서 마 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단 12:12, 13).

 

  다니엘은 자신이 받았으면서도 모두는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과 성 소에 관한 마지막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끝은 다니엘이 치른 염려와 불안,  그리고 고뇌처럼 그렇게 어둡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참으로 복되고 진정으로 기다려지는 모든 약속의 성취로 가득 차 있었다.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 (業)을 누릴 것임이니라.” 어디서 쉴 것인가? 흔히 말하는 대로 영혼이 천당에 가서인가? 아니다. 재림 시에 있게 될 의인의 첫째 부활 때까지 잠처럼 의식 없는상태로 쉬게 될 죽음의 휴식인 것이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2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사 57:1, 2).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20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 지어다”(사 26:19, 20).

 

 

  18살 어린 나이에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의 곁을 떠나, 90여 평생을 만리타향 이국에서 살아간 나그네 다니엘, 민족의 소망과 인류의 구원이 약속되고 조상의 얼이 서린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황폐를 그렇게나 마음 아파하던 애국애족의 사나이,  위대한 기성세대 다니엘, 왕과 사자들 앞에서는  태연자약했지만,  동족의 운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처럼 애절(哀絶)하여 몸져눕기 까지 했던 인간 다니엘,  세계 대제국들의  흥망성쇠가 어지럽게 교차한 세계사의 십자로에서 나라들과 왕들의 운명을 좌우하던 늠름한  선지자-정치가 다니엘, 나는 새도 떨어뜨릴 대제국의 높은 재상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했던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다니엘, 포로의  몸으로 포로  된 땅에서 살아 온 90성상에 거센 폭풍과 시련이 하루도 쉴 새 없이 휘몰아쳤어도 꺾이지 않고 쓰러지지 않은 뿌리 깊은 거목(巨木), 지성과 영성(靈性)의 거인(巨人) 다니엘, 하늘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지녀 온 하늘의 총아(寵兒), 하나님의 귀염둥이 다니엘, 파란만장했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웠던 그 다니엘의 위대한 일생도 서서히 저물어 갔다. 그리고 격전의 연속이었던 구속사(救贖史)의 뜨거운 한낮 동안 땀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하늘의 아들에게,  부활의 새아침을 약속하며,  기나긴 환난과 죄악의 겨울 밤 동안의 휴식을 가져올  깊고 오랜 단잠을 부르는 자애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평화로운 자장가가 아련히 들려온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 임이라”(단 12:13).

 

   다니엘의 하나님이 곧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다니엘에게 인봉된 채 주어 졌던 비밀이 지금 펼쳐져 우리의 손 안에 있다. 다니엘을 지키고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다. 다니엘에게 말씀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축복하고 계신다. 다니엘에게 영원한 하늘과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기별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하늘과 영생을 약속하신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도 다니엘처럼 사는 일이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이 일에도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 모두로 다니엘처럼 살게 하시기를 기도드리는 바이다. 아멘.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영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F. 윈슬로(Winslow) 박사에게 나폴레옹 3세의 소개장을 지닌 프랑스의 귀족 청년이  찾아왔다. “박사님, 잠 좀 자게 해주십시오. 여러 주일 잠을 전혀 자지 못하여 미칠 것만 같습니다.” 윈슬로 박사는 동정 어린 눈길로 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청년은 최근 사업의 실패나, 명예 훼손, 가정 문제 등 어떤 문제로 크게 충격이라도 받은 일이 있소?”  젊은이는 모두 부인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해 주지 않으면  나도 아무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유를 말씀하세요.”

   청년은 괴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무신론자로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잠자리에만 들면, 이런 심각한 질문이 압도해 옵니다. ‘영원, 나는 그 시간을 어디서 보내야 할 것인가?(Eternity, where shall I spend it?)’ 이 질문만 떠오르면 잠은 멀리 멀리가 버리고 골이 터지도록 번민에 압도됩니다.”

  앞으로도 시간은 영원히 흐를 것이다. 50년 후, 100년 후, 1,000년 후, 그때 나는 어디 있을 것인가? 그때의 나의 생명은 어떠할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선택에 달렸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기로 결정할 것인가? 지금이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결정할 엄숙한 선택의 시간이 아닌가? 지금이 바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 28).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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