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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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새로운 출발


 

  가끔 사람들이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혼자 생각해도 부끄러워 지워 버리고 싶은 말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저질러진 일들...후회막심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이 이제는 엄연한 과거가 되어 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무슨 값을 치르고서라도 젊음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다시는 그때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그런 거짓말도 하지 않겠고, 그 때처럼 고집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게 내 욕심만 차리지도 않을텐데!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으니 어쩌랴!
  다시 시작한다는 문제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죄 많은 인간이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요? 분명한 대답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생활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들이 제기됩니다. 즉, 만일 하나님이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지나간 일은 모두 눈감아 주실까요? 또 내면적으로 어떤 변화가 진행되지 않고 갑자기 예수님처럼 생활할 수도 있을까요?



  삭개오는 세금을 거두는 사람으로 재산은 많았지만 사람들에게 몹시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명한 선생님 예수께서 그가 살고 있는 여리고 시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꼭 한 번 뵙기를 원했습니다. 그 세관원은 키가 몹시 작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에수님을 보기 위해서 길가에 서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올려다 보시면서 "오늘 너의 집에 들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의 집에 예수께서 방문하신다는 것입니다(누가복음 1장 1~10절). 
  성경에는 삭개오가 왜 예수를 보고 싶어했는지 그 속마음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호기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일이 이 세관원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누가복음 19장 5절, 공동번역).

  
남에게 인정받고 살아온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실망해서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반응은 응당 있을 법한 일입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은 남들이 호감을 가지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리스도를 모시고 새로운 삶을 출발해 보려는 강한 욕망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일에 대해 비난의 눈초리로 보고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나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복음 9장 13절, 공동번역).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 집에 모신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음가짐이 철저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삭개오는 일어서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누가복음 19장 8절, 공동번역).

 
 삭개오는 이제 돈을 이웃에게 나눠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바라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습니다. 삭개오의 생활이 전혀 딴판으로 새롭게 바뀐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누가복음 19장 9,10절, 공동번역).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분명한 것은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일에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긁어 모은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억지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삭개오의 가슴속에 일어난 변화를 행동으로 옮긴 참된 뉘우침의 표시였습니다. 그런 변화는 곧 드러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살아가는 방식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뉘우친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는 참된 자유와 기쁨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사람이 새로운 삶을 계속하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깊이 깨닫는 사람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삶을 살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게 되면(마태복음 3장 2, 5~8절, 4장 17절, 사도행전 2장 37절) 그에 수반되는 생활의 변화는 필수적입니다. 참된 회개는 생활의 변화에까지 이르러야만 합니다.



  삶의 방향 전환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복음 3장 3절, 공동번역).

  새로 난다는 말에 대해 니고데모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다 자란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복음 3장 5절, 공동번역).

  이 말씀은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을 통해서

  물에 잠기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는 예식을 침례라고 말합니다(다음 과에서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사람의 겉모습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기 전에 성령께서는 먼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중대한 변화를 시작하십니다. 지금까지의 그릇된 생활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살아갑니다

  새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삽니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아드님의 고귀한 생명을 주셔서 우리의 죄값을 갚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주신 나의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내 생애를 주님께 맡기오니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내 마음을 주께 드리오니 내게 오셔서 나를 주님의 뜻대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내 삶을 새로 나게 해 주신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나를 이끌어 성령님의 지도하시는 대로 살아갈 힘을 주시옵소서. 아멘."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났으면 이제는 자라나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나듯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자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에베소서 4장 15절,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이 성장에 대해서 포도나무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을 때만 영양분을 공급받아 가지가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으면 틀림없이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요한복음 15장 2~8절).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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