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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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과 다만 그를 섬기라

 




 

 

 

점성술, 사주, 토정비결, 관상, 수상, 4호 병실, 4번석, 4, 13일의 금요일, 검은 고양이, 수정 구슬, 샤머니즘, 이런 것들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고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도 상당수의 서양인들이 비행기의 13번 좌석에 앉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이 중요한 행사의 날짜를 점을 쳐서 결정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도 있습니다.

장난 삼아 해 보는 것일까요? 심심풀이일까요? 민속놀이 정도로 생각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뭔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더 새롭고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동경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위험이나 공포로부터 벗어나 안식할 수 있도록 장래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빠져 나오기 힘든 올무에 걸려들고 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을 이루어 내려는 집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집념이 너무 강하다 보면 그 일을 이루기도 전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먼저 결과를 눈으로 보고 싶어하는 욕망에 빠져듭니다.
성경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적이 순수하다면 그것을 채워 주는 방법도 순수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사단의 유혹에 이렇게 대꾸하셨습니다
 

 "사탄아,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마태복음 410,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신성한 창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돌이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여 사단을 논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기록된 성경에서 마귀의 유혹을 대항할 힘과 근거를 찾아내셨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연히 태어나서 목적도 없이 살고 우주의 미궁 속으로 흘러가 버리는 먼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너를 모태에 생기게 하신 하나님. 너를 구해 내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나 야훼가 만물을 창조하였다. 나는 혼자서 하늘을 펼치고 땅을 밟아 늘였다. 그때 누가 나를 도왔느냐? 나는 거짓 예언자들의 징조를 빗나가게 하며 점장이들을 바보로 만든다. 지혜 있다는 자들의 생각을 뒤엎어 아는 체하면서 어리석은 짓만 하게 한다"(이사야 44장 24, 25절, 공동번역).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통치자이십니다. 그분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이십니다. 우주의 모든 만물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는 것이지 그 사물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무에 우리의 장래에 대해서도 가장 확실하게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십니다.


 

  흥미롭게도 성경에서는 "초자연적인 지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대 성서 시대에는 예언자들이 나타나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간 다음 거기에서 사는 민족들이 하는 발칙한 일을 배워 그대로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너의 가운데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에 살라 바치는 자가 있었서는 안 된다. 또 점정이, 복술가, 술객, 마술사, 주문을 외는 자, 도깨비 또는 귀신을 불러 물어 보는 자, 혼백에게 물어 보는 자가 있어서도 안 된다"(신명기 18장 9∼11절, 공동번역).
 

  여기 금지된 일을 시도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이 죽은 사람의 혼백을 찾아간 것입니다. 죽은 사무엘에게 도움을 얻으러 갔습니다(사무엘상 28장). 사실 사울왕은 이전에 그가 다스리던 나라에서 모든 점장이와 신접한 사람들은 쫓아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자 자신이 왕이면서도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 물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은 잘 되지 못했습니다(사무엘상 29∼31장).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도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초월적인 능력을 붙잡고 싶어합니다. 고통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고통을 참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선 해결해 보려고 시도합니다. 심령 치료, 초월 명상 등을 통해서 무아경에 도달하여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대단한 세력으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결코 고통을 극복하고 해결함으로써 삶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그런 체험을 주지는 못합니다.
고통이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것은 아닙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고통은 떼어버릴 수 없는 요소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태양빛 찬란한 봄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내 문제를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도록 하나님이 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요 도움이십니다. 그리고 이 도움은 무슨 별난 방법으로 이르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싸워서 극복하는 길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람이 살아서 당하는 고통의 문제를 죽은 사람을 만나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난 과에서 연구한 것처럼 죽음이란 환전한 무의식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 버린 상태입니다. 더 이상 누구를 간섭하거나 영항력을 미칠 수 잇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자주 듣는 것처럼 전생이라든지 하는 것은 성경과는 거리가 먼 사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백 년 전 전생에 살았던 때를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전생에 어떤 짐승으로 살았다고도 합니다. 또 이세상에서 목숨이 다하면 영혼이 나와서 다른 세계에 가서 산다고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회 사상을 믿고 있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은 죽음의 공포를 없애기 위해 사람이 지어낸 것입니다. 퍽 재미있는 생각이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죽은 다음까지 고통을 당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것을 부정합니다. 죽음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이겨야 할 원수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린도전서 15장 26절).
 

  죽음은 우리가 지은 죄 값으로 이르러 온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점에 있어서 명확합니다. 그러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는다는 것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윤회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을 때 다른 어떤 영적 존재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실제적 육체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그들에게 말씀도 하시고 손을 만지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그들과 함께 음식도 잡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죽어서 영혼이 곧장 천당이나 지옥에 갈 수 있다면 부활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맙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육신의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그릇된 길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 우리는 놀라운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자유는 소중한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본 사람이 아니면 자유가 참으로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약이나 알콜, 그리고 여러 가지 잘못된 습관들은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여 자유를 박탈해 버립니다. 또 근심도 사람을 부자유스럽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를 향하고 그를 믿고 따르는 한 우리의 자유를 빼앗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자신의 습관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속박 받지 않고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합니다. 복권을 예로 들어 봅시다. 어느 것이 당첨될지 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맞추지 못합니다. 자신의 장래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점이라도 쳐서 장래 일을 알고 싶어합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늘의 운세" 같은 점괘를 싣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될까, 사업이 어떻게 될까 하는 내용들을 다룹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또 별의 운행에 삶의 주도권을 맡기기도 합니다. 내가 내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먼 하늘의 별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 산다는 것은 우리 삶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도 별의 운행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의 인격과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간섭한다는 말입니까? 모든 것이 미리 정해진 대로 이루어진다면 내게 주어진 자유란 무엇일까요? 별이 정해 주는 운명에 대해 몰두하여 깊이 빠지다 보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상사에 대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운명의 장난이라고 화만 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자기 예언 성취"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다른 어떤 것에 예속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의 삶을 미리 아시지만(시편 139편 16절) 결코 미리 작정해 놓으시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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