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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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캘리포니아 롱비치 해안에는 늦은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이고 있었습니다. 넘실거리는 태평양의 흰 파도가 몰려오는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영장 뒷편으로 약간 높게 난 도로는 그 넓은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무척 좋은 곳이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잠시 차를 멈췄습니다. 시원한 바닷 바람을 쐬던 그의 눈에 해안에서 멀리 파도 속에서 누군가 헤엄쳐 나오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저 아래 내려가 구조원에게 알려 줄까 생각했지만 갈 길도 멀고 내려갔다 오는 일이 쉬운 일도아니어서 누군가 구해 주겠지 하고 그냥 차를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나 집에 도착한 그를 어머니가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쓰러져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방금 전에 네 동생이 롱비치에서 익사했다는구나."
  파도에 밀려 애를 쓰던 사람이 자기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가끔 우리는 직접 나와 상관없는 일이면 모르는 체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국가에서 또는 회사에서도 자신에게 직접 이득이 없는 일이면 나서지 않으려 합니다. 다시 말해, 시민정신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지려는 의식이 없어져 가기 때문에 결혼이 파경에 이르고 가정이 깨어져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상대에게만 그 책임을 떠넘기려 합니다. 좀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요?



  직장 생활이란 대부분 그만한 신임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어떤 지위에 오르게 되면 그 만큼의 책임도 따르게 마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신임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짐승을 부려라"(창세기 1장 28절,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그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주셨습니다(창세기 2장 15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는 책임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생물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를 삼으신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인류의 첫 조상은 이런 책임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뱀의 말을 따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는 그들의 큰 아들 가인도 물려받아 자기 동생을 살해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창세기 4장 9절, 공동번역).

  가인은 시치미를 떼고 발뺌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은 매우 퉁명스럽습니다. 이기적이고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도 인간적입니다.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남을 비난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 자신의 태도는 어떤지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자비할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태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의 입장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또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마태복음 24장 12절, 공동번역).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잘 활용해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감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며 억지로 내리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감은 사랑의 실천에서 완수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염려해 주고, 찾아가 보기도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 주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점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토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리스도 한 분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셨으니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으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고린도후서 5장 14, 15절, 공동번역).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값을 선불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무엇보다도 사랑하셨고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셨으며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는 나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만 급급하지 않고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내 삶의 중요한 동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는 늘 사람들과 친근해져서 서먹서먹하지 않게 지낼 수 있게 합니다. 남을 거북스럽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생활은 여러 면에서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날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됩니다.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갈라디아서 6장 2절, 공동번역).

  우리의 매일매일의 생활은 은둔자처럼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병자를 방문하고 또 어려운 때 이웃집의 아이를 돌봐주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런 자세로 계속 살아가다 보면 내 욕심만 채우려 드는 태도가 바뀌여질 것입니다. 10분만이라도 전화를 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지내십니까?" "어려운 일은 잘 해결되어 가십니까?" "꼭 성공하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시간을 좀 내 보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사십시오,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에베소서 5장 15, 16절,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과도 잘 사귀기를 바라십니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 사람들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29절, 공동번역)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 자신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 하셨으며 또 얼마나 소중히 대해 주시는가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가치가 어떠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무책임하게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우리의 육체도 건강해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야외에 나가서 햇볕을 쬐며 노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은 창조의 기쁨을 갖게 합니다. 나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고린도전서 6장 19, 20절, 공동번역).



  "돈이 있어야 친구도 있는 법이다"라고 말합니다. 신앙 생활에도 돈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금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위대하심을 나타낼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께 받은 것을 이기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금전에 대한 욕심과 풍요의 위험성에 대해 자주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6장 19∼21; 디모데전서 6장 17, 18절; 누가복음 12장 15∼21절). 그렇다고 선한 사람은 돈을 벌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가난한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숨을 걸고라도 돈을 벌려고 달려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는 당연히 돈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요구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수입이나 형편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돈의 사용에 대해서 성경은 좋은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돈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너희는 열의 하나를 바칠 때, 조금도 덜지 말고 성전 곳간에 가져다 넣어 내 집 양식으로 쓰게 하여라. 그렇게 바치고 나서 내가 하늘 창고의 문을 열고 갚아 주는지 갚아 주지 않는지 두고 보아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말라기3장 10절, 공동번역).

  아주 확실한 규칙입니다. 수입의 10분의 1은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그대로 지켜졌습니다(마태복음 23장 23절).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해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억지로 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각각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내야지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 공동번역).

  하나님 자신이 돈을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복음을 널리 전하는 일에 우리의 자금이 나눠 쓰여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충분히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것을 넉넉하게 가질 수 있고 온갖 좋은 일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린도후서 9장 8절,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모두 다 세어 보기도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 우리가 억지로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조금씩 깨달을 때 우리도 남의 짐을 나눠지고 나보다 불행한 이웃에게 도움의 손을 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야만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먼저 모본을 보이셨고 또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날마다 그 모본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우리의 시간, 금전, 재능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친구와 이웃들에게 나눠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의 역할을 실제의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줍시다. 우리는 나누어 줄 만큼 충분한 것을 이미 받았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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