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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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과 하나님의 시간




  "당신이 뭘 하는지 말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가 흔히 다른 사람들을 그 사람의 직업이나 행동으로 평가하려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자주 사회적 신분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유명해지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 하며 또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 쓰러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립니다. 주말이나 휴일도 겨우 쉬는 둥 마는 둥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일하기를 즐기시는 분입니다. 또 노동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만 하시는분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고요와 휴식, 자유 , 명상,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나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는 일,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음미해 보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출애굽기 20장 8절)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제칠일은 안식일이니"(출애굽기 20장 1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낙원에서 사람은 그 동산을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창세기 2장 15절). 사람이 살아가는 데 노동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범죄한 후로 그 노동은 고통스러운 생계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 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창세기 3장 17, 18절, 공동번역).

  노동이 이제 고역이 되었습니다.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서 밭을 가는 일이 한층 더 힘들게 되었고 소출은 줄어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논밭에서 난 식물이나 가축, 그리고 부산물을 먹고 살아가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그런데 이제 전 세계적으로 먹고 사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근래에 와서 작업에서 오는 스트레스, 피로가 더욱 가중되어 직업병이 생기고 파업과 노사 분규가 끊일 사이가 없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의사나 의료보험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가 활동에 대한 전문 회사들이 계속 번창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일에서 오는 지루함과 신경과민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여가가 필요합니다. 고요하고 아늑한 쉼은 활력을 재충전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규칙적으로 쉬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이렛날은 너희 하나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출애굽기 20장 10절, 공동번역).

  하루종일 잠이나 푹 자라는 뜻일까요? 또 한 주일 동안 일하려면 힘을 내기 위해 충전하라는 뜻 일까요? 날마다 똑같은 생활을 하다가 전혀 다른 경험을 해 보라는 뜻일까요? 물론 그런 의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휴식의 날은 단지 잠깐 숨을 돌리는 시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낙원에서도 노동만 있었던 게 아니라 휴식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시고 쉬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창세기 2장 2, 3절, 공동번역).

  깊은 의미가 담긴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초목과 짐승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신 후 맨 처음 쉬신 날입니다.하나님께서도 쉬셨습니다.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며 기뻐하시면서 쉬셨습니다. 그 날을 사람에게 변치않는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쉼인 것입니다.



  안식일의 휴식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은 이 날을 우리가 하나님께 건너가는 다리로 삼으셨습닌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후 제멋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시거나 운명을 정해 두고 그대로 되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의 임재가 늘 우리에게 축복이 되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특별한 것이 되게 하십니다.
인류는 과거 수천 년 간 이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 곁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경험을 해 왔습니다. 그 실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신 후 사랑의 표시로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광야를 여행하면서 날마다 그들이 먹을 식량을 하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중 여섯째 날에는 이틀간 먹을 만큼의 양식이 내려왔습니다. 이 이틀분의 양식은 여섯째 날인 금요일과 일곱째 날인 토요일, 즉 안식일 내내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잘 따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레째 되는 날에도 거두어 들이려고 나가 찾아 보았다. 그러나 있을 리가 없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언제까지 나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느냐? 야훼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다는 것은 명심하여라. 그래서 여섯째 날에는 이틀 먹을 양식을 주지 않았느냐? 이레째 되는 날에는 누구든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라'"(출애굽기 16장 27~29절, 공동번역).

  하나님께서 우리가 안식일의 휴식을 위해 무언가 애써 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게서 마련해 놓으신 것을 받아 누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의 의미 그대로

  예수께서 분명하게 안식일을 지키신 것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귀중한 모본이 됩니다. 현재 많은 교회에서는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을 규칙적으로 지키셨으며 그 의미가 상실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혹독한 정치적 압박과 사회적 핍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한 가지의 통일된 이념과 행동 양식이 절실히 필요했던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그들의 민족 정신을 응축시키는 날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로마 식민 통치하에서 탄생한 기독교가 세월이 흐르면서 유대인과 구별하려는 시도에서 일요일을 예배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이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내린 일요일 휴업령입니다.
기독교인들과 로마의 이교도들을 연합시키려는 의도에서 태양신을 예배하던 날(일요일)을 공동의 예배일로 강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의 동기는 전혀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천지창조의 "생일"이며 사람을 위한 휴일이었고 하나님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량이었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오해

  십계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나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 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출애굽기 20장 8~10절, 공동번역).

  오랜 세월 동안 넷째 계명의 안식일에 대해 사람들은 오해를 했습니다. 이 날에 대한 행동 규칙을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게 정했습니다. 안식일에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거나 침을 뱉거나 등불을 켜거나 글씨 몇 자를 쓰는 것까지도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안식일을 여간 고역스런 날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바리새인들의 규례에 대해 예수께서 나무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의미를 이렇게 밝혀 주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가복음 2장 27, 28절, 공동번역).

  이것은 그동안 오해하고 있던 안식일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밝혀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아예 없애 버리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셨습니다.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고 설교하고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마태복음 12장 9~13절). 그 다음에는 천연계 속에 가셔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즐겁게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늘 하나님과 함께 보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는 날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적이고 의무적이고 기쁨도 없이 되어 버린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되찾아 주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복음 5장 17절, 공동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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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안식일이 사람을 얽매는 쇠사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자유의 날이며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제정된 날입니다. 넷째 계명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규정하는 동시에 "남종 이나 여종","집 안에 거하는 식객"이라도 아무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회, 인종, 문화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 모든 고용인과 피고용인, 내국인과 외국인이 다 포함됩니다. 안식일의 축복을 누리는 데는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한 것입니다.

  "구원의 축복은 한 사람이 누리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거나 못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권력을 얻으려는 욕심을 채워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사무엘레 바키오키, 그대의 시간이 나의 시간, 147쪽).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그 최초의 날에 대한 영원한 기념일입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참된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세계, 즉 우리가 돌보고 지켜야 할 모든 것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생기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한 단서를 찾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천연계가 주는 고요한 휴식을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누리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계획을 근본적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이 세상과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 이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사무엘레 바키오키, 그대의 시간이 나의 시간, 226쪽).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세상의 온갖 재난에 대해서 염려할 뿐만 아니라 이세상을 보다 나은 세계로 가꾸어 나가기 위해 사랑과 책임을 다하게 될 것이다.



  안식일은 이웃과 하나님을 만나 사귈 수 있는 시간이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숙고하는 시간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없이 안식일을 생각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올바른 자세를 가질 때 우리 주변의 세계나 주위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활의 실제적인 업무를 수행해 나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매주마다 안식일의 쉼 속에서 이런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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