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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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과 미리 알려주시는 하나님

 





  "그럴 줄 알았다면!" 우리는 가끔 이런 한탄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때늦은 후회입니다. 그렇게 한탄한들 곤경을 벗어날 무슨 뾰족한 방법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아무 도움도 되어 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환멸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내가 뭐하러 부탁을 했겠어?"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일이 꼬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갖 정성을 기울였던 일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뭔가 잘못 계산했다는 후회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잘못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찬찬히 살펴보지도 않고 무슨 일을 저질렀다가 낭패를 보는 수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따져봐도 하자는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런 근본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무지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일이 그렇게 될 줄을 꿈에라도 짐작했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명을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 뿐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훤히 들여다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누구라도 기꺼이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를 특별히 편애하시거나 별나게 구별하지 않으십니다. 인종이나 남녀, 교육 등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온 세상 누구라도 똑같이 깊은 관심으로 살피십니다. 완전히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을 더할 나위 없는 관심으로 붙들고 이끌어 가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위해 일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내용이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은 계시 가운데 하나님의 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면서 온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나는 또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서 높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모든 나라와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요한계시록 14장 6절, 공동번역).

  
기쁜 소식

  복음, 그것은 참으로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가장 근복전이며 근원적인 것들을 채워 줄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게서 여러분을 자녀로 받아들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을 모든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애쓰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많은 기독교 교파들은 이 문제를 가리워 두고 제대로 연구하거나 밝히려 들지 않고 있습니다.



  첫재 천사는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공중에서 선포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온 세상에서 진행된 옳지 못한 일과 죄에 대해 정의의 하나님이 판가름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심판이 꼭 형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의로운 사람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입니다. 이 천사는 이런 명령을 하늘 위에서 외칩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찬양하여라. 그분이 심판할 때가 왔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샘물을 만드신 분을 예배하여라'하고 외쳤습니다"(요한계시록 14장 7절, 공동번역).

  천사는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심 걱정하라는 말이 안닙니다. 종교적으로 폭력의 채찍을 휘두르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그런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심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생명을 누가 받아들이고 거절했는지를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을 겉모양으로만 복종하고 따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와 감사의 마음을 바라십니다. 우리의 창조주로 신뢰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어떤 물질의 양으로 표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꼭 무릎을 꿇어 엎드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았을 때 진정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다(빌립보서 2장 9∼11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속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전적으로 신뢰하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내어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네 마음대로 하여라"라고 하시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에서든지 하나님을 젖혀두고 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받았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복음 3장 17,18절, 공동번역).



  요한은 계속해서 이번에는 우리들의 결정을 촉구하는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또 둘째 천사가 뒤따라와서 '무너졌다. 큰 바벨론 도성이 무너졌다. 자기 음행 때문에 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바벨론이 무너졌다!'하고 외쳤다"(요한계시록 14장 8절, 공동번역).

  매우 대담한 묘사입니다. 고대 바벨론성은 무신론주의는 아니지만 복잡하게 혼합된 종교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타락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적과 권력을 자랑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성서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진실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자세를 잃어버리는 것을 성서에서는 우상숭배, 또는 영적 간음이라고 말합니다. 살다가도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무너져 버립니다. 내면의 사랑이 없는 외적인 관계는 곧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적인 진실과 신뢰 없이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하게 꾸미려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속빈 껍데기는 무너지고 말 듯이 하나님께 대한 참된 사랑과 존경이 없는 피상적 종교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리마다 행복이 넘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소비하고, 성적 쾌락을 찾는 일에 몰두해 있으며,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유사 종교와 철학의 혼탁에 취하여 의식이 흐려져 가고, 서로가 목소리를 높여 자기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더욱 더 헝클어져가는 종교계에서 무었이 참된 것인가를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분명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도와 주십니다. 성경에는 진리로 향한 길을 안내할 확실한 이정표가 있습니다.



  세 번째 천사는 매우 걱정스러운 기별을 외칩니다.

  "또 셋째 천사가 뒤따라와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고 자기 이마나 손에 낙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부어 넣은 순수한 포도주다. 이런 자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의 구덩이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짐승과 그 우상에게 절을 하고 그 이름의 낙인을 받는 자는 밤에도 낮에도 휴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요한계시록 14장 9∼11절, 공동번역).

  이 구절만 따로 떼어 읽는다면 심각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서두(1장 3절)의 읽는 자가 복을 받으리라고 한 약속이 의심스럽게 됩니다. 여기 묘사된 대로라면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소름이 오싹 끼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의 기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생기는 두려움입니다.

  
비유의 뜻

  셋째 천사는 한 짐승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전후를 잘 연구해보면 그것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거대한 세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존경을 받으며 그 세력을 휘두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모든 사람을 핍박하며 잘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합니다.
그 짐승은 또 그의 세력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표를 해 줍니다. 누구든지 그에게 속한 사람에게 그 소속을 알리는 표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시 이 존재가 가르치는 교리나 신조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또 하나 명백한 것은 이 존재가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충성과 애정을 자신이 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세력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 진노에는 자비가 섞여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영원히 살며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죄를 짓고 그분을 떠나 영원히 멸망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속죄 제물로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의 의지를 강제로 굴복시키는 폭군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응답으로 오는 자발적 순종을 바라십니다.
그러면 복수심에 불타는 하나님께서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유황불을 퍼붓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양손의 떡"이라는 말을 압니다.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에 흔히 쓰는 말입니다. 또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의 후회가 어떤 것인지도 압니다. 엄청난 실수로 선택을 잘못했다는 생각은 마음을 괴롭혀 밤낮 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나하면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 주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에게 보여 주신 이 계시는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확실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충분히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핑계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히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뭐라고 응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을 다 밝혀 주셨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행복을 바라십니다.
  요한계시록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4장 12절,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아 내라고 격려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셔서 돕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사랑과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도와주시겠다고 보증하십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마태복음 7장 7, 8절, 공동번역).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셨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최선의 길을 찾아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우리의 모든 능력의 근원은 하늘 창고에 연결되있으니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불평과 경건치 못한 생활, 몰인정한 태도는 고쳐져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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