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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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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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 런데 길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전도자들을 보면서 과연 저렇게 하면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하지만 물건 하나를 사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하는 세상에 서 통할 리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서로를 알아가면서 신뢰가 쌓이고 결혼에 골인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영접 하는 신앙생활도 그분의 사랑을 앎에서 출발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랑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현대의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방법과 수단, 이념과 개념, 문화와 전통 등 바뀌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과거 십여 년의 과학 발전의 속도는 그 이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의 변화보다 훨씬 더 빨랐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 역시 영원합니다.

 예수의 제자 요한의 간증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과거 거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으로 "우레의 아들"(마가복음 3장 17절)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불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되고 나서 그는 사랑의 사도로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를 어떻게 묘사했을까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한일서 1장 1절).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속 성경을 연구하시면, 분명히 요한처럼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만나며,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문으로 종교(宗敎)는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교육일까요? 어느 유명한 대학교수가 아마존 강을 탐사하면서 함께 데리고 다니는 어린 뱃사공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학교는 다녀 보았니?" "가난하여 어린 나이에 노를 저어야 하는 처지였기에 학교 근처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수학은 배워 봤니?" " …. "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얘야,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말이야,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문학, 고고학 이런 학문을 통해 사람다워지는 거야." 교수님의 조언이 소년에게 좋게 들릴리 만무했습니다. 약이 바싹 오른 뱃사공은 갑자기 작은 통나무배를 뒤집었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교수님에게 점잖게 조언했습니다. "교수님, 수영학이나 좀 배워 두시지요!" 그렇습니다. 사는 법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습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 의하면 사람은 생존을 위한 욕구가 채워져야 자아실현의 욕구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봉사라든가, 종교 생활을 사치처럼 여깁니다. 또한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미신처럼 여기고, 자기가 하는 일 그 이상의 영적인 세계에 문을 닫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교육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법입니다. 성경은 바로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는 책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고, 사랑은 늘 함께 있고 싶어 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교육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수 역시 성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한복음 5장 39절).
성경에서 영생을 얻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책을 가졌다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상고, 즉 연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성경을 소유하고 있고, 배우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정작 성경을 통하 여 궁극적인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40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지 않으면 성경 연구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성경 연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전술한 요한처럼 그분에 관하여 듣고 보고 만지는 구체적인 경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 "영원한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셨기 때문 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를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 입니다.
 
 
 사람은 잘못을 범하면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어린아이일지라도 엄마의 말을 어기고 자기 하고픈 일을 하다가 들키면 야단맞을까 겁을 냅니다. 또한 혼날까봐 두려워 변명하거나 둘러대는 것은 어쩔 수 없
는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아름답게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으로 변장한 사탄의 말을 듣고, 완전한 행복이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두려워서 숨어 버린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몰라서 아담아, 아담아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의 음성 속에서 이미 용서하시고 잃어버린 지위를 회복시키기 원하는 그분의 본심을 들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계속 아담의 이름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보지 못한 하와는 뱀에게 잘못을 전가했고, 아담 역시 자기 아내 탓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꾸중하지 않으시고 온 우주 앞에서 구원의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 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장 15절).

 흔히 원복음(Original Gospel)이라 불리는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탄의 패배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고난과 상처를 받게 하시고 모욕을 감당하시면서까지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면, 정말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장 16, 17).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죄지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시겠다니,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신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일반 종교, 특히 우상을 섬기는 자연 종교는 신(神)을 몹시 두렵고 엄한 존재로 인정합니다. 신을 소홀히 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에 합당한 엄한 저주를 받고 벌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화가 난 신을 달래기 위해 정성스럽게 제사를 드리거나 대신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그 모든 벌을 고스란히 자신이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찾아볼 수 없고 두려움이 신앙의 동기가 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은 사람이 만든 종교와 차별되는 특별한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산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oxytocin) 호르몬은 태아와 일체감을 느끼게 해 줌으로 모성애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기가 얼마나 귀한지 몸으로 알게 됩니다. 사실 아기가 아프면 자신이 대신하여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성애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자신과 동일한 그 아들을 주신다는 의미를 이보다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또한 남자가 수고하여야 먹고산다는 의미 역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는 예수의 약속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땀을 흘려서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신 섭리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장 19절)는 말씀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저주처럼 들리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자들은 사람이 흙으로부터 지음 받았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듯이, 죄지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이사야 64장 8절).
 
 
 첫째,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때론 젖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 할 것이라"(이사야 49장 15절). 요한은 이 고상하고 오묘한 뜻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 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한일서 3장 1, 2절).

 둘째, 사랑하는 형제.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우리와 한형제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히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장 29절). 어떤 교단은 이 성경 구절을 오해하
여 맏아들 예수라는 표현을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오해의 우려를 초월하여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브리서 2장 11절).

 셋째, 사랑하는 연인.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부자지간의 관계로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남녀 관계로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언급합니다. 신실하지 못한 아내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 주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깨닫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이로 표현하면서 죽기까지 사랑하는 헌신을 보여 줍니다.(에베소서 5장 23절 참조). 구원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처녀로 묘사합니다(고린도후서 11장 2절 참조). 아가서를 통해 보여 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둘만의 사랑은 하나님의 친밀함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넷째, 사랑하는 친구. 에녹은 하나님과 친구처럼 늘 동행하였고(창세기 5장 24절 참조), 모세는 친구와 이야기하듯 하나님과 대면했습니다(출애굽기 33장 11절 참조). 성경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가장 크다고 인정합니다(요한복음 15장 13절 참조). 스가랴서는 바로 그 친구의 사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스가랴 13장 6절).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 인류를 친구로 삼으신 징표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율법이 사랑인 까닭은 감정에 따라 변하지 않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품성을 보여 주기 때문 입니다. 범죄한 인류를 구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분의 공의가 무너지면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의 죽는 것을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에스겔 18장 23절 참조). 그러므로 인류의 죗값을 대신 갚고 인류의 죄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고쳐 주셔서 인류로 하여금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죄의 근원을 처리하고, 인류의 심령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의를 살리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는 오묘한 진리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데는 다른 피조물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창조하신 분이 책임지셔야만 했습니다. 공자나 석가모니나 무함마드나 소크라테스와 같이 위대한 성인일지라도, 남의 죄는커녕, 자신들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선(善)을 행하고 착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분리되어 태어난 사람은 그 자신이 죄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속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에게 구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신성(神性)에 인성(人性)을 쓰신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장 6~8절). 그런 까닭에,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수천명의 대중 앞에서 큰소리로 담대히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장 12절).
 
 
 엔도 슈샤쿠는 그의 소설에서 "예수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심도 있게 다루었 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믿는 자의 마음속에 영원한 메시아로 태어났습니다. 예수의 탄생은 남편과의 관계가 아닌 성령의 잉태로 말미암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가만히 마리아와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 라"(마태복음 1장 20절). 처녀의 잉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 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장 14절). 구원자 예수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복음 1장 23절)라는 뜻입니다. 죄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셔서 영원히 함께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이름입니다.
 
 
 유대 나라 베들레헴에서 호적 조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젊은 부부 요셉과 마리아는 새로 호적을 정리하기 위하여 본적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너무 많이 모여들어서 여관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집과 마을이 모두 사람으로 차고 넘쳤습니다. 이 젊은 부부는 머무를 곳을 얻지 못하여 어떤 집 외양간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밤에 마리아는 산기가 있어 아기 예수를 낳고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그때에 베들레헴 성 밖 언덕에는 양 떼를 지키며 밤을 보내는 목자들이 있었습 니다. 그들은 당시 세상의 어지러움을 탄식하며, 어서 메시아가 오셔서 세상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 그 빛난 광채가 두루 비치니 저들이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누가복음 2장 10~12 절)고 하였습니다.

 넓은 들과 산골짜기를 통하여 멀리 퍼진 이 찬미 소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르는 축복과 평화를 노래한 것입니다. 과연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는 평안과 화평이 있습니다. 그들의 가정이나 사회에도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다툼이 자취를 감추고 오직 화평만 있게 될 것이니, 예수님이야말로 '평화의 왕'이십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베들레헴 성으로 돌아가,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찾아보고 그에게 공손히 절하였습니다.

 또 먼 동방 나라에서는 박사들이 이상한 별을 보고 구주가 나실 것을 알고 유대 나라 베들레헴으로 찾아와, 구주로 나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 등 매우 값진 예물을 드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옛글 가운데서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민수기 24장 17절)라는 말씀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찍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은 죄의 창시자 사탄의 일을 멸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는 마굿간에서 초라하게 태어나셨으나 십자가의 승리 이후에 천하만국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사탄과의 싸움을 폭로하는 요한 계시록은 이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요한계시록 12장 5절). 그리스도는 이렇게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시면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탄생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더 나아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하늘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더 이상 죽음이 그 인생을 다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사람들은 욕망과 욕심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기심을 마음의 보좌에 앉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리는 자들의 찬송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요한계시록 5장 13절).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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