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 역사의 궁극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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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11일 아침8시45분 테러리스트들은 납치한 두 비행기를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시켰다.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2004년 12월에는 지진으로 생겨난 엄청난 해일이 순식간에 동남아 해안을 강타하여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문제는 그렇게 무서운 비극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수많은 점쟁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세상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다고 호언 장담하던 수십만 명의 예언자들과 점성술사들은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 무엇을 했는가? 그 사건들을 미리 예언했더라면 세계적 영웅
이 되고 돈과 명예가 한꺼번에 굴러왔을텐데 왜 그 사건을 예언하지 못했는가? 진상은 명확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결단코 미래를 예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가? 세상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지구라는 별은 도대체 어디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지, 그 마지막은 어디인지, 내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는 정말 알 수 없는 것인가? 내 운명이나 이 세상의 미래가 뉴욕의 쌍둥이 건물처럼 어느 날 어이없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인가?
  대답은 절망적이다. 어렴풋이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느껴지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인가 불길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올 지를 전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약 1,000번의 예언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예언들이 이미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나머지 종말에 관한 예언들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게 된다.
  성경에 의하면 미래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미래를 성경의 예언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펼쳐 보이셨다. 성경에는 대표적인 두 권의 예언서가 있는데 구약에서는 '다니엘'이요,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지금부터 연구하려는 책이 바로 신약 성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이다. 다니엘서는 바벨론으로 부터 페르시아, 헬라와 로마제국을 거쳐 현재의 세계 질서가 이루어지고 마침내는 지구의 종말이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세계 역사의 대 파노라마를 예언하였다.
  신약 성경의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 출생 이후부터 세계사와 교회사에 나타난 선악의 대쟁투와 특별히 세계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날 사건들을 정확하
게 예언하였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연구함으로써 이 세상에 다가오는 미래를 알 수 있으며 이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기 위하여 우리가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독특한 표상들과 상징적인 언어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신실한 백성들에게 많은 위로와 용기와 희망의 원천이 되어왔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 인들에게 요한계시록은 여전히 해석할 수 없는 신비의 책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해석할 수 없는 책을 성경으로 허락하지 않으셨다. 모든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밝히 깨달아 알아서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부지런히 공부하여 마지막 선악간의 대쟁투에 대한 배경과 그 결과를 미리 알고 그 환난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신약 성경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책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이 신약 성경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살펴보자. 신약 성경(新約聖經)은 총 27권으로 되어 있다. 언뜻 보면 복음서(福音書) 몇 권과 편지서(書信) 몇 권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조직적이고 절묘한 구조(構造)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 성경은 4권의 복음서와 1권의 역사서(사도행전), 21권의 편지서 그리고 1권의 예언서(요한계시록)로 구성되어 있다.
  복음서 중에서 처음 세권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라고 부른다. 보는 관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에는 구조와 내용이 비슷한 공통되는 기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자주 사용하는 헬라어 단어까지 똑같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보다 약 40년 후, 즉 1세기 말에 씌여진 책으로서 공관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사들을 담고 있다.
  이렇게 사복음서(四福音書)가 각각 특색있는 주제와 목소리로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사중창을 들으면서 우리는 사도행전(使徒行傳)이라는 다리(bridge)로 간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편지서를 이어
주는 다리다. 우리는 이 다리 위에서 복음서와 편지서를 조망하면서 복음이 어떻게 전 세계에 퍼져나갔으며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한 눈에 보게 된다.
  신약 성경 27권 중 21권의 편지서는 다시 14권의 바울 서신(書信)과 7권의 일반 서신(一般書信)으로 나뉜다. 바울서신은 바울이 그의 사랑하는 교회들에게 그 당시의 편지형식으로 보낸 서신들을 말한다. 편지를 받는 수신자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서신(General Epistle), 혹은 공동 서신(Catholic Epistle)이라고 불리는 7권의 서신은 바울 외에 다른 신약의 기자들이 공동의 수신자에게 보낸 편지서들로써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일·이·삼서와 유다서를 말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연구할 신약의 마지막 책은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이다. 선악이 대쟁투 속에서 악의 세력의 정체는 무엇이며 성도는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르는 장엄한 승리의 노래로 신약 성경은 끝나는 것이다.
  계시록(apocalipsis)이란 이름은 감추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사실은 요한의 계시록이 아니라 책 첫머리에 나와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이라고 해야 옳다(계 1:1).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다. 성경의 모든 책들이 요한계시록 안에서 만나고 끝을 맺는다. 창세기의 처음 두 장이 창조와 타락과 실낙원(失樂園)의 이야기라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은 재창조와 회복과 복낙원(復樂園)의 이야기다.
  우리가 책을 사려고 할 때 우리는 먼저 저자가 누구인지를 살핀다. 그 책의 저자가 권위 있고 유명한 사람이라
면 그 책에 더 호감이 간다. 그런 점에서 요한계시록은 안심하여도 좋은 책이다. 저자가 예수님 자신이며 기록자는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세베데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아버지를 도와 그물을 수선하다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마 4:21) 그의 어머니 살로메는 매우 경건한 여인이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멀리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경건한 여인 중에 요한의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다(마 27:56). 그 어머니의 평생에 걸친 기도와 신앙이 "사랑받는 제자" 요한을 만들었을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로 부터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격이 급하고
열성적인 전형적 갈릴리의 어부의 기질을 가졌으나 후에는 성화의 모범이 되었으며 베드로 그리고 야고보와 함께 예수께서 늘 곁에 두기를 원하시는 수제자였다. 요한은 예수를 생명처럼 사랑하였으며 죽기까지 그를 따랐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도 가야바의 법정에까지 들어가서 예수께서 고난당하시는 것을 친히 목격한 유일한 제자였다. 예수를 "멀찍이"(막 14:54) 좇다가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요한처럼 바짝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훨씬 쉽다. "멀찍이"신앙은 영리한 것 같지만 고생스러운 것이다. 거기에는 신앙이 감격과 기쁨도 머물지 못한다.
  요한이 이렇게 "바짝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서인지 그는 제자들 중에 가장 오래 살았다. 후에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에베소에 와서 살았으며 에베소 교회의 사도 및 장로로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에베소 근방에 세워진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돌보았다. 그는 도미티안(Domitian, A.D. 81~96)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 할 때에 체포되어 끓는 기름가마 속에 들어가는 형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기적으로 살았다.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을 숭배하도록 강요하였으며 그것을 거절한 그리스도인들은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인 요한도 에게해의 고도(孤島: 쓸쓸한 돌섬)인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유배생활을 지내는 동안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를 보고 요한계시록을 저술하셨다.
  요한계시록의 일차적인 수신자는 소아시아에 세워진 일곱교회의 신자들이다. 그 중심지인 에베소에 요한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이 이 교회들을 돌보고 사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한이 이 글을 써 보낸 일곱교회는 당시 극심한 핍박 속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한 자신도 기름가마에 들어가기도 하고 밧모 섬에 유배되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도미티안 황제는 치밀한 계획과 교활함을 가지고 자기를 신격화하는 황제 숭배를 온 아시아에 보급시켜 로마를 정신적으로 통일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불법으로 간주되어 신앙이 금지되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가 밀려왔던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연대는 아마도 로마황제 도미티안(Domitian, A.D. 81~96) 황제의 통치 말기인 96년경이었을 것이다. 황제는 교회을 핍박하고 지도자인 요한을 죽이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그를 밧모 섬에 죄수로 가두었다. 요한은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썼다(계 1:9) A.D. 96년 도미티안 황제가 죽자 네르바(Nerva A.D. 96~97) 황제 때 밧모 섬에서 석방된 사도 요한은 다시 교회를 순회하고 감독들을 임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의 말년을 보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외에도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를 기록하였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목적과 동기는 일차적으로는 그가 받은 계시 때문이었다. A.D. 95~96년경 그리스도인들에게 밀어닥친 핍박 때문에 그가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그가 받은 계시는 너무나 명확하여 무시할 수도 없고 숨겨둘 수도 없는 것이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또 하나의 목적은 황제숭배의 강요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각종 핍박으로 부터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소아시아 지방의 교회와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요한 개인이
자의로 쓴 기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분이 백성들에게 보이시려고 요한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계시이다.(계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그 "속히 될 일"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특권이요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연구할 요한계시록은 총 22장인데 크게 다섯부분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14장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즉 교차 대구적 구조(chiastic structure)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4장을 중심으로 해서 처음 13장은 역사적 기록이고 나중 9장은 종말론적 기록이다. 전반부는 어둡기 짝이 없다. 온갖 천재지변과 각종 무서운 짐승들이 나타나고 여러가지 상징들이 우리 마음을 두렵게 한다. 그만큼 선과 악의 대쟁투가 치열하고 무섭기 때문이다. 후반부는 우리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다. 악은 패하고 최종 승리는 성도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첫번째 부분(1장~11장)에서는 무서운 선과 악의 대쟁투가 일곱
교회(1장~3장), 일곱 인(4장~7장), 일곱 나팔(8장~11장)과 함께 묘사되고 있다.
두번째 부분(12~13장)에서는 악의 세력의 정체가 폭로된다. 12장에서는 모든
악한 세력의 근원인 사단의 정체와 그 활동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13장에서는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짐승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
세번째 부분(14장)에서는 선악 간의 대쟁투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마지막 호소가 발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이 요한계시록의 중심이다. 요한계시록의 중심은 짐승들의 활동도 아니고 짐승들의 멸망도 아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인 것이다.
  네번째 부분(15장~20장)은 악한 세력의 정체를 설명한 두 번째 부분과 대칭이 되는 부분으로 악한 세력의 멸망을 다루고 있다. 드디어 하나님의 최후의 호소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일곱 재앙이 내린다(15장~16장). 그런 다음 사단의 하수인이었던 음녀가 멸망당하고(17장), 바벨론이 망하고(18장), 짐승이 잡히고(19장), 마침내 사단이 결박당하여 영원히 멸망당하게 된다(20장).
  다섯째 부분(21장~22장)은 대투쟁의 끝이다. 모든 악이 세력들은 간 곳 없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다. 마침내 어린 양과 그의 백성들이 승리한 것이다. 장엄한 구원의 이야기는 행복과 기쁨으로 끝난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알기 쉬운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에는 전통적으로 몇 가지 방법이 사용되어 왔다.
  첫째는 과거주의 방법(preterism)이다. 과거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내용들은 일차적으로 기원 후 1세기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그대로 이루어진 과거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과거주의 학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요한계시록은 예언서가 아니며 단지 1세기에 있었던 로마의 대대적인 핍박을 묘사한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 1세기에 살았던 교회와 독자들에게 주어진 기별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예언서이기 때문에 그것을 1세기의 수신자들을 위한 것으로만 제한해 버리면 요한계시록은 미래를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별 의미가 없는 책이
되고 만다.
  둘째는 이상주의(idealism)적 해석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어느 특정한 시기나 장소에 적용하지 않고 각 시대를 통하여 계속 진행되는 선악의 대쟁투를 묘사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에다 어떤 문자적 혹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상주의적 해석가들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각 시대에 적용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히기는 했지만 역사적, 현실적 의미가 없는 상징이나 예언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답변해야 한다.
  셋째로 미래주의(futurism)해석이다. 미래주의자들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의 모든 예언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재림 직전에 성취될 미래의 것들이란 것이다.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은 오늘날의 우리와는 아직 상관이 없으며 세상의 멸망 직전에 일어날 짧은 마지막 사건들에만 관계되는 책이 되고 만다.
  네번째 학설은 역사주의 해석(historicism)이다. 역사주의 해석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모든 역사적, 교회사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것들은 이미 과거에 성취된 것도 있으며 어떤 것들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고 또 다른 것들은 재림 직전에 이루어질 것 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성취된 것에서 예언의 확실성을 깨닫게 되면 오늘 이루어지는 것들에서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고 미래에 이루어질 것들을 예측하여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선과 악의 대투쟁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를 과거에서 배워 오늘 결단하라고 요청하며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마지막 구원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이라는 해석이다.
  위의 네 학설 중 네 번째 주장이 요한계시록 해석방법 중 가장 성경적이며 예언서를 해석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인이시며 역사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성경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였으며 그 역사는 세상 끝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의 예언서로 요한계시록이 있다면 구약 성경에는 다니엘서가 있다. 다니엘서가 기록된 후 600여년이 지나서야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두 책은 서로 상관없는 책이 아니다. 사실상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한 책이나 마찬가지다. 다니엘서가 바벨론 시대부터 그리스도 재림시까지의 세계 역사의 흥망성쇠와 마지막 때에 생길 일을 기록하고 그 예언을 마지막까지 인봉하고 간수하라(단 12:4)고 한 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고 하였다.
  즉 다니엘서에 인봉된 종말에 관한 모든 예언은 요한계시록에 이르러 남김없이 개봉되고 공개된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6,000년 동안에 벌어진 선악간의 대쟁투와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에게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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